2022/07 56

큰 누이

나의 누이 넷 처음과 끝은 17년의 세월 차이 세월은 어찌할수 없나 보다 남의 일이 나의 일이라는 그 말 스무살에 시집가서 억척스럽게 일 만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열살 아들 횡단보도 싸늘한 콘크리트 바닥에 누운 피 범벅 자식 모습 그 모습 잊으려 더 일에 매달려 나의 인생을 모르고 살아온 세월 그 세월의 보답이 일흔여섯에 꼬부랑 할머니라니.. 말 없이 나의 가슴이 젖는다 내 누이는 평생 아가씨 같은 모습만 그렸는데 바로 나의 일이 되었구나 몇 년전 한 누이는 일찍 먼 길 가고 아직은 고와야 될 누이모습 눈물 나는 현실이다 아 세월이여 아 나의 누이여

그리움의 바다

감포의 바다는 그리움이 사무치는가 보다 사무침이 과하여 용솟음치며 너를 나타내나 보다 언제나 파도를 그리워하는 너의 마음 파도가 네 마음을 대변 하는가 파도가 내 마음을 대변 하는가 쉼 없이 밀려오고 밀려가고 그위를 덮쳐 하얀 포말로 너와 나의 맘 대변하는구나 그래 그렇게 부서져 후련하다면 산산히 부서지고 또 부서져라

영일대 해변과 물회

포항 북부 해수욕장으로 더 알려진 영일대 해수욕장은 포항 북구 영일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해상누각으로서, 두호동행정복지센터 앞 해상 100m지점에 위치해 있다. 고사분수는 대한민국 최초의 해상 고사분수로서, 바다시청앞 해상 250m지점에 위치해 최대 높이 120m까지 물을 뿜으며, 사방에 LED 조명등 이 갖추어져 있다. 영일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해상누각으로서, 두호동행정복지센터 앞 해상 100m지점에 위치해 있다. 고사분수는 대한민국 최초의 해상 고사분수로서, 바다시청앞 해상 250m지점에 위치해 최대 높이 120m까지 물을 뿜으며, 사방에 LED 조명등 이 갖추어져 있다. 영일대는 대한민국 최초의 해상누각으로서, 두호동행정복지센터 앞 해상 100m지점에 위치해 있다. 고사분수는 대한민국 최초의 해상 고..

포항 천년고찰 고석사

포항의 천년고찰을 검색하니 청하보경사와 오천 오어사 그리고 여기 장기 고석사가 나온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조용한 고석사의 부처님을 만나러 간다. 창건 신화 ~ 포항 장기면 방산2리 평동의 망해산(望海山) 아래에 조용히 천년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고석사가 있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7년(638), 어느 날 경주에 있는 궁궐에 동쪽으로부터 세 줄기의 서광이 비춰 그 빛이 연 3일간 계속되었다. 신기하게 여긴 여왕께서 사자로 하여금 조사하도록 하였다. 사자는 서기가 발하는 동쪽방향으로 찾아가 보니 현 고석사의 한 괴석으로부터 서기를 발하고 있었다. 이 괴석은 사람이 소나 말을 타고, 그 앞을 지나가면 발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반드시 사람이 내려야 하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사자는 ..

한탄강 순담계곡 잔도

고석정에서 한탄강을 따라 2킬로미터쯤 내려가면 만나는 명소가 철원군 갈말읍 군탄리의 순담계곡이다. 이 계곡은 조선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김관주가 몸이 허약해지자 벼슬을 그만두고 전국의 휴양지를 물색하고 있을 때 이 고장 출신인 조선 영조 때의 문신 유척기가 추천한 곳이다. 순담계곡은 계곡의 양편 언덕이 거대한 암반이라 마치 신들이 빚어놓은 조각품 같다. 말년을 의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여긴 김관주는 이곳에 오자마자 거문고 모양의 연못을 만들어 순채蓴菜라는 나물을 제천 의림지에서 구해다 심고, 못 이름을 순담蓴潭이라고 지었다. 순채는 수련 모양의 약초로 봄이면 줄기에 흰색의 액체가 쌓이는데, 이것이 허리 아픈 병으로 인한 담에 특효약이다. 이렇듯 아름다웠던 한탄강도 오늘날 댐이 생기고 래프팅을 비..

고석정

고석정하면 생각나는 의적 임꺽정... 고석정은 한탄강 변에 있는 정자이다.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 안에 숨어 지냈다고 하는데, 이 바위에는 성지, 도력이 새겨져 있고 구멍 안의 벽면에는 유명대, 본읍금만이라고 새겨 있다. 현재 2층 정자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져 1971년에 콘크리트로 새로 지은 것이다 고석정 공원은 잘 꾸며졌고 라밴더 꽃밭은 보라의 나라를 만들고 있었다 30년전의 방문과는 완전히 달라진 고석정입구이다 주위의 모습을 올려 드립니다 발길은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에 도착하여 바쁘게 움직인다. 마당 중앙에 서있는 이 반긴다. 조선 명종 때 임꺽정(林巨正, ?∼1562)은 고석정 건너편에 돌 ..

세월/구흥서

돌아볼 수 있는 세월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음은 더 행복한 것이다. 빠듯한 삶의 시간을 채워가며 사회의 일원으로 뒤쳐지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시간이 어느 사이에 이렇게 멀리 달아나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는지 가슴에 찬바람만 지나간다 엄마 치마끈을 붙잡고 6.25 전쟁 피란길에 올라 여섯살 어린 나이에 검정고무신 벗겨질까 새끼줄로 꽁꽁 묶어 밟고 지나갔던 그 눈 쌓였던 신작로 길은 4차선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시원하게 차들이 달리고 있다 집 앞 논두렁 개울가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형들을 따라다니며 코흘리개 일곱 살짜리 국민학교 시절 우등상장을 들고 집으로 달려오면 어머니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동네방네 자랑을 하러 나가신 엄마의 발자국 소리에 가득했었다 마흔여섯..

노동당사/승일교/삼부연폭포

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勞動黨舍)는 1946년에 완공된 3층 건물이다. 6.25전쟁(六二五戰爭 , Korean War)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의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다. 현재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6.25전쟁과 한국의 분단현실을 떠올리게 해서 유명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나 유명 음악회의 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현재 철원 노동당사는 철원군(鐵原郡)이 안보관광코스로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2001년 2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면서 정부 차원의 보호를 받고 있다. 노동당사는 그날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한 채 말없이 서서 전쟁의 교훈과 반공의 교훈을 말하고 있다. 저 공산당을..

백마고지

철원평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봉우리인 백마고지... 철원 백마고지 전적지는 625전쟁격전지로 395고지라고도 한다 철원 백마고지 전적지로 올라가는 길은 태극기와 자작나무가 나란히 있어 너무 예쁜데 행복하기보다는 마음이 조금 경건해지는곳이다 백마고지는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벌어진 싸움은 철원군 동송읍이 평리에 세워진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에 적힌 대로 포탄 가루와 주검이 쌓여서 무릎 높이까지 채울 만큼 치열하였다. 해발 395미터인 이 산봉우리는 열흘 동안 주인이 스물네 차례나 바뀌면서 1만 4000명에 가까운 군인이 죽거나 다쳤고, 쏟아 진 포탄만 해도 30만 발이 넘었다는 비운의 백마고지이다 전망대 입구에 3개의 시계가 멈춰 있는데 왼쪽것이 우리국군이 백마고지 전투에서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