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바우

세월/구흥서

빈손 허명 2022. 7. 21. 10:39

 

돌아볼 수 있는 세월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것이다.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음은 더 행복한 것이다.

빠듯한 삶의 시간을 채워가며 사회의 일원으로 뒤쳐지지 않으려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시간이 어느 사이에 이렇게 멀리 달아나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는지 가슴에 찬바람만 지나간다

 

엄마 치마끈을 붙잡고 6.25 전쟁  피란길에 올라 여섯살 어린 나이에 검정고무신 벗겨질까 새끼줄로 꽁꽁 묶어 밟고 지나갔던 그 눈 쌓였던 신작로 길은 4차선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시원하게 차들이 달리고 있다

집 앞 논두렁 개울가에서 미꾸라지를 잡던 형들을 따라다니며 코흘리개 일곱 살짜리 국민학교 시절 우등상장을 들고 집으로 달려오면 어머니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동네방네 자랑을 하러 나가신 엄마의 발자국 소리에 가득했었다

마흔여섯에 난 막둥이 아들의 상장이 얼마나 대견스러웠을까?. 

해 질 녘 청미천 넘어 샛강 위에는 나무다리가 놓여있고 오갑산 에 나무를 하러 간 형들을 마중 나가며 엄마가 싸주신 고구마 감자  보퉁이를 들고 달려가서 기다리면 동네 형들이 큰 나뭇짐을 지고 일열로 어둠을 등지고 걸어오던 숭고한 모습이 저녁연기에 가려 환영처럼 보였었다

 

무거운 삶을 등에 지고 묵묵히 걸어갔던 그 시절의 우리 부모님의 사는 모습이 기억 속에서 그 모습을 되새기고 있다

참으로 억척스럽게 살아왔다.거침없이 내디딘 발걸음은 삼성전자 기술실에서 시작되었고 작은 건축사 사무실을 개업하며 뿌리를 내리고 꽃망울을 만들었다

아들을 자전거 앞 작은 의자에 태우고 뒤엔 아내를 태워 달려가던 남한강 대교 다리아래서 고체연료 위에 불을 붙여놓고 구워 먹던 삼겹살의 맛이 지금은 다시 맛볼 수도 없는 귀한 맛이 되었다

남한강 금모랫벌에서 집안 동서 가족과 야유회를 갔을 때 깨어진 술병에 딸아이 뒤꿈치가 반을 잘려 나갈 듯 베어 었을 때 우는 딸아이의 뒤꿈치를 움겨 잡고 달렸던 그 시간도 전농동 철도 관사 작은 창고 방에서 자취를 하며 끓여 먹던 맛없는 콩나물국의 비릿한 냄새가 지금은 왜 그리운지 모르겠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유학을 갔다.

여름방학때 동창모임을 한다 고 초등학교 교실에서 장병호 담임선생님을 모시고 장래 희망사항을 이야기할 때 나는 내 고장에서 아들딸 많이 낳고 지역유지로 살겠다며 소박한 꿈을 이야기했었다.

그 이유에서 인지 아들 하나 딸 하나 만두고 아이들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지역 유지로 이름 석자를 알리는 것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 역시 바람같은 것이다.

세월은 유수같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고 흘러감에 사람이 바뀌고 세대가 바뀌어 지난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세월의 그늘 뒤로 사라져 기억을 남기는 사람은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있다.

나도 그 흐름에 끼어 어느 연속극 주제가의 가사 처럼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양 사라지고" 도도 히 흐르는 남한강 가에서 노을 지는 서쪽산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는 것이 취미가 되어 노을빛을 닮은 인생이 되어 자체적인 발광을 잃은 채 아주 조금씩 스러져 가고 있다

 

온갖 풍상의 역동의 시절이 지났어도 삶을 유지했고 이곳저곳 외국여행을 다녀와 자랑처럼 사진을 보며 즐거워했던 시절도 모두 다 지나고 보니 헛헛한 바람이다

지금 같다면 조금은 인생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족과 나를 위한 일정을 채워가며 살아갈 것같지만 그 시절 꿈과 희망사항이라는 남자의 가슴에 불꽃은 활활 타올라 누 구도 그 불길을 끌 용기조차 내지 못했었다

행복했는가? 물어온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는 것은 삶의 참맛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세워놓은 삶의 스케줄 때문일 것이다. "사나이 가는 길엔 좌절이란 없다.." 하며 달려갔던 그 청춘은 다 어디로 가고 없을까? 

집과 직장을 오가며 고속도로에 버려졌던 청춘의 시간은 보상같은 것은 하나도 기억하지도 못하고 어느 바람에 어떻게 쓸려 갔는 지조차도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집념이 나를 붙잡고 내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의 바 램을 나는 채울 의무가 솟구쳐 있었다.

 

문학잡지에 등단을 하고 글을 쓴답시고 나대던 시절... 그 분야에서 또 무언가의 감투를 쓰고 이름 석자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시간들은 어디에 가 있는지 조차 찾기도 어렵다

세월은 언제나 침묵하며 수레바퀴를 돌려그 곳을 떠나간다.

물어도 대답조차 없고 네가 알아서 하라  는 충고조차도 할 줄 모른다.

냉정한 것이 제 위대한 힘을  자랑은 커녕 숨은 듯 아닌 듯 지나쳐 가기에 어리석은 사람 속에 나도 이렇게 늙은 시간에 살며 가버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다시 돌아갈수 있다 해도.. 아니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지금 이대로 이 세월을 누리다가 잊은 듯 사라져 갈 것이다

아들에게 미리 말해두었다."사람도 많이 부르지 마라.. 좋은 베옷 도 입히지 말고 그냥 있는 대로 나를 보내라.. 울거나 야단스레 걷치례도 하지 마라.  어느 날 네가 또 이세 월을 이별할 때 바람 부는 언덕에서 한 줌의 재로 뿌려라.. 내가 가는 날엔 온 가족 모여 제사상 같은 것은 만들지 말고 나를 추억하며 맛난 저녁을 먹고 내가 좋아하던 음식과 취미와 옷과 그리운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져라..." 무엇을 더 말할 게 있을까? 어머니 가 돌아가시며 내 손을 쥐고 마지막 힘을 주시던 그 느낌조차 얇게 기억을 흐려가는 지금 나 는 다 내려놓고 아주 가볍게 숨을 쉬며 노을을 바라본다

마지막 인연하나 먼데 아들에게 노을 사진을 찍어 보내며 마음으로 가슴으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아들에게 먼데 아들의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그 아들의 마지막 인사를 받고 싶은 것 역시 욕심은 아닐까?

나는 이미 돌아갈 길 위에서 있고 바라볼 수도 없는 그 영혼의 모습 앞에 울어준들 알리가 있을까?

할 일은 다 했다. 아들에게 딸에게 먹고살 기회를 넘겨주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먼 곳에 아들은 제가 충분히 살아갈 힘이 있어 내가 자질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넉넉히 제 스스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기에 걱정은 하지 않는다만 그래도 나의 마지막 길을 초대받지 못한다면 내 영혼이 서러울 것 같아 그의 전화번호를 아들에게 알려 주었다

 

장맛비가 그치고 서산에 노을빛이 곱게 물드는 저녁 아내와 같이 걷기 운동을 하고나 집에 오면 어둠이 밀려와 있다. 아내도 어언 일흔세 살 의 세월을 견딘다. 둘이 사는 집안에 먹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내일 또 봅시다  내일 또 벌떡 일어 납시다  " 라며 눈을 감으면 아침이 올때야 다시 살아있음을 알기에 이 느낌을 아마도 얼마다 더 이어갈 수 있을까? 

코뼈를 잘라내고 가슴을 잘라 심장에 판막을 갈아 끼우고 암으로 창자를 잘라내고도 살아있음은 축복이다. 이런 축복을 누구나 받고 살지는 못할 인생이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살아오면 서 하고 싶은 것을 거의 다 하고 누리고 늙어왔기에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고 후회하며 돌아가고 싶다면 그것은 욕심이다. 다 내려놓고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게 적응하다가 행복하게 눈을 감고 먼 여행을 떠나길 소원한다.

여름이 깊어간다. 나라 경제가 어렵다고 야단이다. 아이들 걱정을 하다 모두 제가 타고난 운명과 타협하며 잘 살 것이다 라며 내려놓았다

손주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지금이다. 이게 느슨한 인생의 즐거움이라 말하고 싶다. 아 좀 더운 날이다 먼데 아들놈  땀 좀 흘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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