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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가사처럼

묻고 싶어 너를 만나게 되면 나를 떠난 후 정말 괜찮은지 또 다른 누굴 만나 날 잊고 사는지 혹시 나와 같은지 그 누군가가 너를 물을 때마다 이젠 날 떠나 행복할 거라 해 나 또한 알고 싶어 너무 힘들어 너를 잊을 수 없어 사랑해 사랑해 너의.사랑이 너무 필요해 기억해 날 잊지 마 너를 너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의.사랑이 너무 필요해 기억해 날 잊지 마 너를 너무 사랑해 너 하나만을 사랑한 죄밖에 없어 사랑 때문에 모든 걸 포기했어 이제 단 하나 나의 바람이 있다면 행복하게 살아줘 떠나간 사랑을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과 어떻게 사는건지 걱정하고 앞으로 행복을 빌어주는 바보같은 사랑을 표현한 노래 가사 같다 이미 내곁을 떠났는데 남의 여자가 되었는지 날 잊었는지 행복한지 그런게 왜 궁금할까 어느 스님이 ..

오늘밤은

** 마음이 흐르는 곳 ** 저기 꽃이 비에 젖고 있다 활짝 웃으며 반기던 이쁜 꽃 풀잎에 맺힌 이슬이 영롱하다 마음이 흐르는 곳은 풀잎에 고인 이슬보다 꽃 잎에 맺힌 이슬이다 너는 그곳에서 너의 마음이 가는 곳에 멈추고 나는 너에게 로 흐르는 내 마음을 멈추지 못한다 잊혀질 만 하면 다시 다가오는 저 아픈 기억들 속에서 오로지 하나로만 흐르는 것 아무리 막아내려 해도 거침없이 넘실거리는 이 물줄기 같은 마음 가두려 하면 넘치는 이 지독한 집착 ** 흐린 날 의 기억 ** 흐린 그리움 속에 간절했던 것은 이미 바람 속 에 사라져 버렸다 바람은 불고 지나간 것들을 날려 버린다 지나간 것은 다시 돌아 올 수 있을 가? 아쉽고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던 것들 하나 쯤 남기고 싶었던 진한 기억 조차 다 싣고 흘러간..

가야산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스님을 봉안한 고심원에서 성철 스님을 바라보며 내 마음을 보여 드렸다 나의 인연 그 인연의 心을 해탈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할수 있는 것이 너무나 미미하여 안타깝기만 하여 백련암을 나와 해인사로 내려오는 동안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해인사 입구에서 빵을 하나 사고 물을 하나 사서 허기진 배를 달래고 해인사로 발 길을 옮긴다 성철스님의 사리탑에 먼저 들려 합장을 하고 해인사로 오른다 요즘 유투브에 제일 핫한 종교인 성진스님이 어쩌다 어른의 프로에서 하는 방송을 보았는데 3배는 왜 하느냐... 1배는 부처님께 2배는 가르침에 3배는 스님에 따르겠다는 뜻으로 3배를 한다고 하였다 과거 해인사에 몇 번 왔었지만 오늘은 해인사를 제대로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천천히 경내를 돌아본다..

백련암

오늘 봉화 청옥산 명품 숲길을 걸으려 갈 계획이었는데 아내와 둘이 가기엔 너무 먼길이라 해인사와 성철스님이 수도 하였다는 백련암을 다녀오자고 하고 해인사로 방향을 돌렸다 해인사의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백련암은 성철스님의 존 상이 봉안되어 있는 고심원에 들어가 꼭 살아있는 성철스님을 보는듯한 경건함을 느끼며 아내와 시간 가는줄 모르게 성철스님을 바라 보았다 여기 백련암은 기이한 바위의 경치와 탁 트인 전망은 가야산의 제1경승지로 손꼽힌다. 암자 좌우로 용각대(龍角臺)·절상대(絶相臺)·환적대·신선대(神仙臺) 등의 기암이 있고, 뜰 안의 불면석(佛面石)은 천연의 한 덩이 거암(巨岩)으로서 마치 불면과 같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예로부터 고승들이 많이 배출된 유명한 수도처로서, 해인총..

냉장고

요즘 어느집이나 흔히 볼수 있는 환경이자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핵 가족화의 단면인 부부 둘만의 늦깍이 신혼 아닌 신혼같이 사는 것이다 우리집도 예외가 될수 없지만 우리는 일찍 아내와 둘이 살아온지 오래 되었다 애들이 고등학교부터 기숙 생활을 하여 일찍 둘이 신혼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놈은 고등학교 기숙사생활 대학은 서울로 유학을... 졸업후에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인턴 생활에 그리고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또 서울 신랑만나 서울에서 살림을 차려 서울 깍정이가 되어 버렸다 둘째 놈도 고등학교 기숙사에 대학은 가까이 다니며 잠깐 같이 지냈는데 ROTC 군사 훈련과 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하며 집을 떠나 생활을 하고 전역 후 2년만에 결혼하여 영영 우리와 딴 살림을 하고 있다 둘이 사는 집이..

남평문씨 세거지(오늘일기)

오늘 행운의 숫자라는 7월의 첫날이다 어제 인터넷 쇼핑에서 본 남평 문씨 세거지의 황토흙담.. 그위로 피어나는 슬픈 소화..능소화 꽃 그리고 정원의 백련과 홍련... 어제 할배할매 기일 제사를 모시고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아침 늦게 일어나 아점으로 10시에 제사 나물로 밥을 비벼 먹고 아내와 남평문씨 세거지로 출발을 하였다 집에서 약 40분거리... 과거 이곳 벽화마을에 다녀온적이 있는데 그때 이곳을 왜 보지 못하였을까 주차장이 두세곳이 되는듯하고 가장 가까운 주차장입구에 문익점 동상과 목화밭이 조성되어 있고 한켠에 큰 붓과 목화씨의 형상이 세워져 있다 문익점선생의 기지로 우리나라에 목화가 재배되고 우리 선조들이 한겨울을 따뜻하게 지낼수 있었는 것 모두가 문익점 선생의 공이리라 잘 꾸며진 거리를 걸으며 ..

주왕산 계곡산행

매월 4째 수요일은 새경산 산악회 산행날이다 지난달과 그 전달 산행은 내가 서울 중앙회 회의 참석과 음악회 참석으로 산행에 참석 못하고 세 달만에 참석하여 금고 현황을 설명하고 금고가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산악회등 금고 관련 단체에 꾸준히 지원할수 있도록 산악회 회원들에게 당부의 인사를 하였다 주왕산 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대전사 천년고찰을 관람하고 부처님을 만나고 트레킹을 시작한다 주왕산의 모습은 기억도 가물가물 아마 40여년 전에 다녀가고 처음이라 과거 기억이 없는건 당연하다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 이렇게 차례로 평지길 같은 계곡길을 오르는데 기암괴석의 협곡을 지날땐 여기가 우리나라가 맞는가 할정도로 경치가 빼어 났다 특히 전날 장마비로 많은 계곡물이 불어 푹포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함께한 산..

대전사

경북 최고 명산의 기슭에 자리한 청송 주왕산 대전사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672)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임진왜란때 불타 조선 현종(顯宗) 13년(1672)에 새로 지어 현재 사찰의 중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1976년에 보광전을 고칠 때 1662년의 상량문(上樑文)이 발견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자그마한 건물로 천장은 '井'자 모양으로 꾸몄으며, 내부에 비로자나불(毘盧子那佛)을 모시고 있다.

선풍기

옛날 우리 엄마 어릴적 그 보다 더 엄마의 엄마때 그때 여름은 어떻게 지냈을까 연신 부채란것 손풍기를 팔이 빠져라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고 당신 더운것 보다 자식들 더울세라 자식들 얼굴에다 손풍기 돌리시던 엄마 엄마의 엄마 그렇게 흘러온 세월속에 지금 우리는 선풍기라는 문명과 에어컨이라는 신 문명에 35도를 오르 내리는 찜통에도 시원하게 지내고 있다. 보름전 선풍기를 한대 사러 갔다 우리 집에는 선풍기가 세대 안방 거실 아래층 창고에 각각 한대씩 있어 한대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이번에는 좀 비싼 좋은 선풍기를 사려하고 아내와 하니마트에 들려 선풍기 쇼핑을 한다 안내 아가씨가 쿠쿠 선풍기 360도 회정에 일반 선풍기 보다 더 시원한 바람이 장시간 나오는 최첨단 선풍기라고 현혹한다 나는 밥솥 만드는 회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