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지** 964

남근석과 금월봉

충북 제천 무암사 절 주차장에서 남근석이란 이정표따라 시원한 숲길로 들어 선다 5분여 오르니 계단이 나타나도 경사도가 아주 심하다 과거엔 밧줄 타고 오르는 험한 바위산이라 하였는데 그나마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오르는 산꾼들이 편하다 오늘따라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않는지 조금 오르다 쉬고를 반복한다. 열번은 쉬었나 계단을 휘몰아 돌아 올라서니 거대한 바위 하나가 존재를 드러낸다. 잘생긴 남근석이 등대처럼 우뚝하다. 주변을 압도하는 외모가 유혹적이다. 바위 냄새만으로도 충분히 향기롭다. 약간 부끄러운듯 하던 아내는 이 거대한 남근의 기를 받아 가야 한다며 품에 들어오지 않는 남근석을 안는다 힘을 받아 아프지 않있으면 좋겠다 제천의 동산의 품속에 있는 남근석입니다 남근석에서 차로 15분거리에 큰길 옆 멋진 바위..

제천 무암사

흔적을 따라 여행하는 나는 무암사 법당에 앉아 무암사 부처님을 바라보며 마음속의 바램을 말씀드렸다 모두 들어 주시진 않겠지만 무암사 부처님은 들어 주실것만 같았다 제천 작성산과 동산 사이에 있는 무암사는 신라시대에 창건 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수 없다 다만 법당인 극락보전에서 명문기와가 발견되어 조선 영조 16년에 중수 되었음을 알수 있다. 목조 아미여래좌상은 주불로 통나무로 조각 되었는데 조선 후기에 전형적인 목불로 원만한 얼굴과 몸체의 양감 표현에서 뛰어난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의상대사가 개산조로서 이 사찰을 창건하였으며 대찰을 이루어 무림사霧林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사찰을 창건할 당시에는 안개가 혹은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숲이 그 숲의 나무들이 석가세존의 설법을 듣던 1250..

영월 법흥사

제천 무암사와 남근석을 보고 경산으로 내려오는길에 조금 돌아 가더라도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법흥사 적멸보궁이 들려보자"라며 달려 갔다 적멸보궁에서 참배를 하고 법흥사 경내를 돌아 보니 해맑게 웃으시는 보기만해도 푸근한 포대화상이 반겨준다 극락교를 건너 사자산 계곡따라 들어가니 원시림같이 무성한 풀들과 숲 그리고 맑은물이 흐르고 그 물소리에 정신이 맑아 진다. 아름답고 마음이 정화되는듯한 다시 찾고 싶은 사찰이다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나라의 흥륭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기위해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興寧寺)로 창건했다.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마조도일 선사로부터 선(禪)을 전수받았던 신라의 선승 도윤칠감국사의 제자 징..

적멸보궁

신라의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을 친견 후.. 상원사, 정암사, 통도사, 봉정암과 함께 이 곳 법흥사를 창건 한 것으로 전해진다.. 5대 적멸보궁이라 함은.. 자장율사가 창건한 이 다섯 곳을 일컫는다.. 이곳에 법흥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징효대사 보인탑비(보물 제612호), 징효대사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재 제72호), 법흥사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재 제73호), 법흥사 석분(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09호) 등이 있다. 적멸보궁을 오르는 길이 조금 가파르지만 큰 소나무가 양 옆으로 도열해 있는듯한 아름다운 길이다 적멸보궁과 그 뒤에 석분과 부도가 나란히 자리 하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하고 나오니 내 마음도 가벼워지는듯 하다

풍기 금선정

영주 풍기의 숨은비경 금선정, 금선계곡 이곳을 가려고 휴대폰에 스크랩한지 2년이 넘었다 이곳 한곳만 보기는 멀기도하여 풍기 오면 가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천갔다 오면서 잠시 들렸다 시원한 물소리의 계곡과 아름드리 소나무 절벽위에 자리한 금선정 늦게나마 잘 왔다는 생각이다. 금선정은 금선계곡을 한자로 쓰면 錦仙溪谷이다. 줄여서 錦溪라고도 한다. 금선계곡에 흐르는 물을 옛 사람들은 금수(錦水)라고도 했다 한다. 금(錦)은 비단을 말한다. 선비들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금(錦) 자를 많이 애용했다. 선(仙)은 신선(神仙)이란 뜻으로 선비들은 신비감을 나타낼 때 선(仙)이란 표현을 많이 썼다. 소백산 비로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산을 타고 계곡을 흘러내려 한바탕 휘돌아 소를 이루는 곳이 있다...

화성 건릉 융릉

아름다운 조선 왕릉 융릉과 건릉은 매표소 입구에서 조금만 걷다 보면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융릉, 왼쪽으로 가면 건릉이 있다. 능으로 가는 길이 소나무와 참나무 숲길로 이어져 있어 풍경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융릉과 건릉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가장 긴 산책 코스도 약 1시간이면 충분해 부모님을 모시고 온 부부나,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다. 평지와 약간의 경사로 이루어지고 길이가 짧아 남녀노소 산책을 즐기기에 좋으며 고즈넉한 숲길이 마치 역사 속 한 장면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곳. 이곳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과 건릉’이다. 정조와 사도세자 융릉(隆陵)과 건릉(健陵)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하는..

화성 용주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 용주사 자리에 원래 신라 문성왕 16년(854)에 염거화상이 창건한 갈양사가 있었다. 고려 광종21년(970)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수륙재를 개설하는 등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때 소실된 후 폐사가 되었으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고 낙성식날 밤 정조가 꿈을 꾸니 용(龍)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여 절 이름을 용주사(龍珠寺)라 했다고 전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중창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게 꾸미도록 했다. 50여 목판과 함께 대웅전 옆 잔디밭에는 10개항에 이르는 부모은중경을 새긴 탑비가 우뚝 서 있다.대웅전 후불탱화는 김홍..

서해 최북단 백령도

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장산곶 남쪽 38°선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인천에서 서북쪽으로 191.4㎞ 떨어져 있다. 남한의 서해 최북단의 땅으로 남한 본토보다 북한 내륙에 가깝다 주요 관광지로는 사곶천연비행장을 비롯하여 두무진·콩돌해안 등이 있는데, 옹진백령도 두무진은 1997년 12월 30일 명승 제8호로 지정되었으며, 옹진백령도사곶사빈(천연비행장)은 쳔연기념물 제391호로, 옹진백령도남포리콩돌해안은 천연기념물 제392호로 같은 해에 지정되었다.

백령도 두무진

인천에서 뱃길로 4시간 반 가량을 북서쪽으로 줄곧 내달리면 닿는 섬, 서해의 종착역 백령도이다. 백령도는 북한 황해도 장산곶에서 불과 17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섬으로 휴전선과 가깝다는 군사적인 이유로 아직까지 태초의 신비와 아름다운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무공해 섬이다. 백령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고니 한 마리 새가 북쪽의 장산곶을 향해 날개 짓하는 것처럼 보여 과거에는 곡도(鵠島)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새 모양의 섬에 머리에 해당되는 곳에는 백령도 비경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두무진(頭武鎭)이 있다. 100m 가까이 치솟은 누런 바위 덩어리들이 4km나 되는 해안선을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는 곳. 두무진은 코끼리바위, 장군바위, 촛대바위, 선대암 등 걸출하고도 웅장한 기암들이 금강산의 총석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