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지**/서울&경기도

화성 건릉 융릉

빈손 허명 2023. 5. 9. 09:54

아름다운 조선 왕릉
융릉과 건릉은 매표소 입구에서 조금만 걷다 보면 두 개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가면 융릉, 왼쪽으로 가면 건릉이 있다. 능으로 가는 길이 소나무와 참나무 숲길로 이어져 있어 풍경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융릉과 건릉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가장 긴 산책 코스도 약 1시간이면 충분해 부모님을 모시고 온 부부나,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 많다. 평지와 약간의 경사로 이루어지고 길이가 짧아 남녀노소 산책을 즐기기에 좋으며 고즈넉한 숲길이 마치 역사 속 한 장면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곳. 이곳은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과 건릉’이다. 

정조와 사도세자 
융릉(隆陵)과 건릉(健陵)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하는 역사 유적지 중 하나다. 능(陵)은 임금이나 왕후의 무덤이며, 융릉과 건릉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두 개의 무덤을 뜻한다. 융릉은 장조(사도세자)와 헌경황후(혜경궁 홍씨)를 합장한 능이며, 건릉은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와 효의황후 김씨를 합장한 능이다. 

융릉과 건릉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사도세자로 더 많이 알려진 장조(莊祖, 1735~1762)는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다. 태어난 이듬해 왕세자로 책봉돼 15세에 영조를 대신에 정사를 돌봤으나, 영조와 불화를 겪고 정치적 풍파에 휩쓸려 27세에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사도세자(思悼世子)라는 시호를 내렸다. 사도란, 생각할 ‘사’, 슬퍼할 ‘도’ 생각하면 슬프다는 뜻이다. 

정조(正祖, 1752~1800)는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로 할아버지 영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정조는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해 당파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을 기준으로 인재를 등용하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 진흥에 힘썼다. 또한, 군사력을 강화하고 수원 화성을 건축하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해 아버지의 명예 회복시키고자 했다. 

정조의 효심이 깃든 역사 유적지 
정조는 효심이 깊은 아들이었다. 불운하게 생을 다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조선 최고의 길지인 화성 현륭원(융릉)으로 옮기고 아버지를 참배하기 위해 매년 능을 찾았다. 한양 도성에서 융릉까지의 거리는 약 60㎞. 그 길은 아버지를 기리는 효행의 길이었다. 

1762년 장조(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 무덤을 만들고 수은묘라 했으나 정조는 즉위 후 수은묘를 높여 영우원이라 칭했다. 이후 현재의 자리인 경기도 화성시 화산으로 옮기고 정조의 명으로 특별히 격을 높여 조성하고 이름을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었다. 헌경황후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현륭원에 합장했고, 원을 능으로 높여 지금의 융릉이 됐다. 

1800년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융릉 동쪽 언덕에 건릉을 조성했다. 죽어서라도 아버지의 곁을 지키겠다는 정조의 효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821년 효의황후가 세상을 떠나고 건릉에 합장하려 했으나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융릉의 서쪽인 현재의 자리로 옮기고 합장릉으로 건릉을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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