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지**/서원&정자&정원 58

무산사

합천 능가사를 돌아서 아내와 같이 주세붕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왔는데... 두가지 실망을 한다 하나는 모든 문화재관람을 못하도록 대문이 꼭꼭 잠겨 있다 두번째는 나의 잘못인데.. 몇 백년된 고목의 백일홍의 꽃이 90%는 져 버렸다는거... 안타까워~~ 함안 칠서의 무산사.. 무산서당 무산사는 조선시대의 유명한 유학자인 주세붕(1495~1544) 선생의 영정과 유품을 모신 곳이다. 선생은 중종 38년(1543)에 백운동 서원을 세워 우리나라서원의 시초를 이루었으며,이를 기리기 위하여 숙종 24년(1698)에 선생의 후손이 세웠다. 고종(1863~1907)때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유림들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불탔다. 현재의 무산서당은 그 후에 세운 것이다. 무산사 내에 있는 무산서당은 앞면 5..

西山 서원

1706년(숙종 32) 지방유림의 공의로 생육신인 조려(趙旅)·원호(元昊)·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3년에 ‘西山(서산)’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84년 정부의 보조와 유림의 협력으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외문(外門), 육각정(六角亭), 3칸의 고사(庫舍)와 육각비(六角碑), 조려의 사적비 등이 있다. 묘우에는 조려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원호·김시습·이맹전·성담수·남효온 등..

세연정

우리나라 3대 민간정원이라 하는 담양의 소쇄원 영양의 서석지 보길도 세연정 중 오늘은 보길도 윤선도 원림의 세연정을 소개합니다 고산 윤선도는 조선 중기 광해군부터 인조시기까지 활동했던 문신•시인이다. 그는 병자호란 때 왕이 청나라에 항복하자 치욕을 이기지 못하고 제주도로 떠난다. 떠나는 중 보길도를 지나게 되고 보길도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제주도행을 포기하고 보길도에 터를 잡는다. 고산은 섬의 모양이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붙이고 섬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었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그 중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공적인 기법으로 조율한 ‘세연정’이다.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가 조성한 전통 정원이다. 담양의 소쇄원과 영양의 서석지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전통 정원으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돈암서원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우리나라 서원이 영남지방에 6곳과 정읍의 무성서원 장성의 필암서원 그리고 여기 논산의 돈암서원이다. 서원은 조선시대 공부를 가르치던 사설 대학교와 같은 학교이며 옛 건축물의 역사적인 의미를 헤아려 볼수 있어 우리 부부는 찾아 다니며 서원을 만난다 여기 돈암서원 역시 아내와 함께 찾았는데.... 관리가 잘되어 있다 마루에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본다 시원하다 공부고 뭐고 그냥 잠자고 싶은... 여기가 천국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서원. 1634년 김장생을 배향하여 건립했으며,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1660년 사액선원이 되었다. 서원이 처음 입지 한 숲말 산기슭의 큰 바위를 돈암이라고 불렀는데, 이 바위의 이름을 따서 사액을 받았다고 알려..

금호서원

경북 경산시 하양읍 부호리 114(가마실길 2길 32-1)에 위치한 금호서원(琴湖書院)은 조선 세종때 좌의정을 지낸 경암 허조(許稠 1369-1349)선생을 배향한 서원이다 세종 3대 명재상 허조의 철학이 깃든 금호서원 황희, 맹사성과 함께 세종 3대 재상으로 통하는 청백리. 직언으로 왕의 선정을 도운 대나무 공신, 조선초기 태평성대 발판을 마련한 수응재상(瘦鷹宰相) 경암 허조(許稠 1369-1349)는 1369(공민왕 18)∼1439(세종 21).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중통(仲通), 호는 경암(敬菴). 판전객시사 허수(許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도관정랑(都官正郎) 허윤창(許允昌)이고, 아버지는 판도판서(版圖判書) 허귀룡(許貴龍)이며, 어머니는 통례문부사 이길(李..

쌍벽당

광산 김씨 쌍벽당공파 종택인 쌍벽당 5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지고온 쌍벽당 본체.... ㅁ자형 건축물이다 쌍벽이라는 뜻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말한다. 세상의 명예를 쫒지않고 선비로써 바른 삶을 살아 간다는 뜻이다. 자손대대로 "벼슬을 하지 말라"는 선조의 유지를 받들어 큰 벼슬을 하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이분이 쌍벽당 주인이신..... 연세가 89세 닭띠라고 소개를 하신다 자부심이 대단하시고 쌍벽당에 대하여 설명을 하여 주신다 수온당 고택과 다른 고택들....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옛 흑기와 그대로 .... 그 위엔 와송이..... 쌍벽당 종택에서 멀지 않는곳..... 워낭소리 영화의 주인공 누렁이 무덤......

고려동 유적지

경남 함안군에 고려동 유적지가 있다 고려동유적지는 고려 후기 성균관 진사 이오(李午)선생이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거처를 정한 이후 대대로 그 후손들이 살아온 곳이다. 이오 선생은 이곳에 담장을 쌓고 고려 유민의 거주지임을 뜻하는 '고려동학' 이라는 비석을 세워 논과 밭을 일구어 자급자족을 하였다. 이오는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았다. 또 아들에게도 새 왕조에 벼슬하지 말 것이며, 자기가 죽은 뒤라도 자신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도록 유언하였다. 자손들은 19대 60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선조의 유산을 소중히 가꾸면서 살았다. 뿐만 아니라 벼슬보다는 자녀의 훈육에 전념하여 학덕과 절의로 이름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에 고려동(高麗洞..

함안 무기연당

함인 무기연당은 주재성의 생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연못이다. 주재성은 조선 영조 4년(1728)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켜 관군과 함께 난을 진압한 인물이다. 관군들은 돌아가는 길에 그의 덕을 칭송하여 마을 입구에 '창의사적비(倡義事蹟碑)'를 세우고 서당 앞 넓은 마당에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고 산의 모양을 본떠 놓았다. 이후 주재성은 연못의 이름을 '국담(菊潭)'이라 하고 호를 삼았으며, 연못가의 서당에서 학문에 전념하며 유유자적하였다. 연못의 서북쪽에는 오래된 정침한 채가 남아 있으나, 많은 부분을 고쳐서 그 가치를 잃고 말았다. 연못가에는 후대에 풍욕루(風浴樓)와하환정(何換亭)을 지었고, 최근에 충효사(忠孝祠)를 지었다. 연못 주위에는 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내어 영귀문(詠歸..

영양 서석지

서석지(瑞石池)는 석문(石門) 정영방선생이 1613년에 축조한 연못과 정자이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원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3대 민간정원으로 꼽힌다 내가 본 민간정원으로는 서울 석파정... 잊을수 없다 여기 서석지도 물론 아름다움의 극치다... 앞으로도 전국의 민간정원과 정자 투어는 계속 할것이다 서석지로 들어 가는 마을 길 옆에 연당리 석조여래좌상이 누각에 보존되어 있다.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는 불상으로, 머리와 눈부분이 깨져 있고 광배가 3조각으로 절단되어 있기는 하지만 거의 완전한 상태다.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서석지 인근 계곡의 병풍처럼 멋진 곳.... 청계정... 서석지 인근 .... 문이 잠겨있다 정자 앞 작은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