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지**/서원&정자&정원

西山 서원

빈손 허명 2022. 8. 6. 22:27

1706년(숙종 32) 지방유림의 공의로 생육신인 조려(趙旅)·원호(元昊)·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성담수(成聃壽)·남효온(南孝溫)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3년에 ‘西山(서산)’이라고 사액되었으며,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84년 정부의 보조와 유림의 협력으로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4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외문(外門), 육각정(六角亭), 3칸의 고사(庫舍)와 육각비(六角碑), 조려의 사적비 등이 있다. 묘우에는 조려를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원호·김시습·이맹전·성담수·남효온 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입구에는 함안 조씨 위인 12명의 선조들 비가 세워져 있다

 

서산이란 명칭의 유래

서산은 사기 혈전에 나오는 고죽국의 왕자 백이, 숙제의 고사에 기안한다.

백이와 숙제는 부친이 죽자 왕위를 양보하고 나라를 떠났는데 주나라가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그러나 주나라의 무왕은 아버지 문왕의 장례도 마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상나라 주왕을 정벌하려고 했다.

백이숙제는 부자지간의 예의와 군신지간의 의리를 들어 말고삐를 잡고 만류하다가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강태공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무왕이 상나라를 평정하고 천하가 주나라를 섬기게 되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않고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죽었다.

그들은 죽기 전에 고사리를 캐는 노래인 "채미가"를 짓는데 그 첫구절이 <저 서산에 올라 산 중의 고사리나 캐자>이다. 여기서 서산은 백이와 숙제가 절개를 지킨 수양산을 말하는 것으로 자체로 절개를 상징하게 되었기 때문에 생육신을 기리는 이름으로 지어졌다.

 

 

채미정에서 나와 도로에서 마주 보이는 강 건너에 정말 멋있는 작은 계곡의 바위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의 예사롭지 않은 바위가 병풍처럼 세워져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백세청풍 (百世淸風) 바위 이렇게 멋진곳 서산서원 들리면 꼭 내려서 감상하고 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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