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는 내리고 **
온통 세상을 적시려 내리는 비다
나무도 풀잎도 슬픔에 젖은 듯하다
하늘은 회색빛 내리는 빗줄기도 회색빛에 물들었다
한동안 간절했던 때도 있었다. 목 마름과 갈증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때
한줄기 빗줄기는 쳥량감 으로 삶의 의욕을 채워주지만 온종일 내리는 비는
제방을 넘고 둑을 무너트리고 온 세상을 흙빛으로 채운다
흙으로 돌아가야 할 우리네 인생도 어찌 보면 한 점 빗물에 흐르는 흙빛 물방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창문을 적시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그 어린 시절 장마 때 만 되면 마당으로 밀려오던 흙탕물이 넘실 넘실 거리를 좁혀 올때 마다 부모님들의 근심 스런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 자린 벼가 물에 잠기고 쓰러져 있을 때 큰 탄식을 하던 아버지의 흙빛 무명 어깨가 더욱더 초라해 보였었다
일기예보에 장마가 길 것이라 는 말을 들으며 7월은 비가 자주 오겠구나 생각했지만 지루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삶의 여유를 찾으러 마음을 돌린다
비가 그치면 그물 을 들고 잉어를 잡아 올리던 동네 형님들도 이제는 다 먼 여행 을떠나 셨고 찾아가 보아도 아무도 없는 고향 빈 집터엔 잡초만 무성하다
인생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자신이 타고난 업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보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면 모두 한편의 영화 같고 한권 의 소설 책 속에 어느 주인공이 된 듯도 하다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배신을 당하고 미련에 가슴을 태우기도 했던 수많은 시간들이 모두다 한줄기 빗물처럼 흘러가 버려 기억도 가물거린다
만나고 헤어짐이 삶 속에 수없이 다가오고 지나가지만 유독 잊지 못하고 가슴에 제 이름을 각인 해주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많은 바람이 불고 지나가도 점점 더 또렸 하게 기억을 뚫고 올라오는 사람은 아마도 전생에 부터 깊은 인연 이였으리라
서 정주 님의 시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이란 시에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철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라는 귀절 이 있다
지금이 아닌 그 전 부터 이미 맺어진 지울수 없는 인연의 그림 속 에서 만났던 것을 표현했으리라 생각한다
비 오는 날 엔 온통 마음이 착찹 해진다
아주 오래전 기억부터 가슴속에 감추어두었던 눈물겨운 그리움이 제일 먼저 고개를 들고 올라온다
살다 보면 누구나 다 그런 경험을 하나하나 채우고 비우며 살아가고 있으리라
유독 지나치게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집요하게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사람도 있었고 거침없이 돌아서서 바람처럼 흩날려 버린 인연들도 있었다
우리의 삶의 패턴이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한다. 10 년 전 20 년 전 그 시절의 삶의 방식과 지금의 삶의 방식이 너무나 현저하게 달라 가끔은 스스로 그 세월의 열차에서 소외된 것 같음을 느끼기도 한다.
오늘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 철이 없었던 날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무엇 때문 일가?
부모님 슬하에서 아무런 세월의 무게를 느끼지 않고 뛰어놀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갈수 있다면 그리고 다시 지나온 세월속 에서 다시 살아 올수 있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며 공허한 마음을 달랜다
나무 잎이 빗물에 젖어 맑은 물방울 들을 끝에 매달고 늘어져 있다. 살구나무는 이미 살구를 다 떨구고 시끄럽게 지저귀던 물 까치 들 도 어디에 선 가 비를 피하고 있으리라
오랬만에 아내와 옷장 정리를 했다. 켜켜이 쌓인 옷들..그리고 수많은 옷들이 삶아온 시간의 궤적처럼 가득 채워있었다
단독에 살때 추워 두터운 옷들을 사두었던 것들..은 다 내다 버려야 할 것 같다. 외출을 해도 이제는 누구 하나 알아볼 것 같지 않아 체면 치례 로 사 입었던 고급 옷들이 다 무용지물 처럼 옷 장속 에서 옛 영화를 꿈꾸고 있는 듯했다
비 오는 날은 지나간 세월을 관조 할수 있는 시간이다. 남은 인생의 시간이 얼마 될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살다가 가려한다.
아령을 들고 상체 근육을 키운다. "다 늙어서 뭔..일로..?"
아내가 의아해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 기꺼이 아령을 들고 팔의 ..가슴의 근육을 키우고 열심히 걷고 운동을 하여 살아있음은 축복을 노래 할 것 이다
비가 아직도 내린다. 운동을 할가 말가 우산을 쓰고 갈가 말가 고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