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나의 일기

부끄러운 자화상

빈손 허명 2022. 10. 12. 20:37

부끄러운 자화상

나는 허명이다
유년시절 너무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어린이였다
누나들 속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적으로 인성이 그렇게 형성되고 있었나 보다
그러나 나의 내면 속에는 활기차고 하늘을 날고 싶은 욕망 가득한 어린이였었나 보다

언제 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친구들과 청송 주왕산 산행과 칠포리 해수욕장 캠핑을 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이야 캠핑 문화가 일반적인 유행이 되어 야외에 나가 보면 온통 첨단 캠핑 장비 전시회 하는 듯 줄지어 캠핑장으로 나와있는 걸 보지만 그때만 해도 재래식 원시적인 캠핑이었다
그 당시 국민학교 친구 영재, 동화, 정태, 경식이 그리고 경식이 대구 친구인 대환이 여섯 명의 청춘이 겁 없이 다닌 산과 해수욕장의 캠핑이다
대구에서 지방으로 가는 경로는 북부, 남부, 동부, 서부정류장이 있어 동해안 쪽으로 가는 것은 동부 정류장에서 출발을 한다.  청송 주왕산행 버스에 맨 뒷자리에 자리를 한 겁 없는 햇병아리 청춘이 자리를 차지하고 첫 캠핑의 기분을 내며 달려갔다
주왕산의 절경을 보는 것도 좋지만 좋은 벗 들과의 일상을 도피한 것이 더 좋은 그날이었다
그렇게 주왕산을 돌아 칠포 해변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쌀쌀한 해변에서 모포를 뒤집어쓰고 먹는 라면 맛과 냄비밥의 맛 그리고 포항 보경사 12 폭포 중 관음폭포에서 개 폼 재며 사진 찍던 것들 이런 것들이 나의 첫 캠핑 추억이다

과거 우리 선배님들은 무전여행을 많이 다니셨고 무전여행이 젊은 사람들의 기본 코스처럼 한 번은 해야 하는 통관 의례처럼 여기던 때가 1970년대 초중반이었다
무전여행은 돈을 소지하지 않고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원래 무전여행은 정말 돈 한 푼 없이 하는 여행은 아니고, 여행지에서 일용직으로 여행비를 벌어 충당하는 일종의 자급자족 여행을 의미한다. 혹은 완전히 제로 페이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의 돈과 음식물을 가지고 가기도 한다.
공교롭게도 국민학교 친구 중 제일 친하였던 세명이 대학에 떨어지고 기가 죽어지낼 때였다

시험 발표 후 첫 번째 친구들이 계모임을 하는 날  세명이 식당 앞에서 만나 "우리 재수 여행 가자 다녀와서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대학에 가자" 라며 의기투합  모임 회비 등 세명이 가진돈 모두 7~8천 원으로 무작정 떠나기로 하고 경산에서 대구역까지 버스를 탄다. 그 당시엔 버스에 기사와 차장이 있어 공짜 차 타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대구역 버스 승강장에 도착한 우리는 "뒤에 뒤에 뒤에"라고 하며 내려 얼른 기차역 속으로 사라졌다
무전여행에서 기차 공짜 타는 방법 공짜 잠을 자는 방법 등 기본적으로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은게 있어도 처음 하려니 겁도 나고 정직하게 만 살아온 숙맥 친구 셋은 실행에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고민 끝에 정식으로 표를 끈고 대전역에서 환성 하여 이리역 까지 내 달렸다 그렇게 이리역에서 또 부여까지 간 우리는 벌써 경비의 반을 써 버렸다 먹어야 되고 기본적인 경비도 써야 되는데 앞길이 난감하였다 일단 부여에서 잠을 공짜 잠을 자야 한다
우리는 부소산 앞에 있는 지서(지금의 파출소)에 들어가 잠을 잘 수 있도록 구원을 요청하였다
그때 순경이"이놈들 집 나왔지? 지금 버스 타고 역에 가면 통근 열자가 10시 좀 넘으면 있으니 얼른 가라"라고 호통을 친다
지서에 들어가 재워달 라면 11시쯤 들어가서 이야기해야 어쩔 수 없이 재워준다는데 참 순진하기 그지없는 촌놈들이었다

지서에 잠자러 들어간 시간이 겨우 9시도 안 된 시간이었기에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행동이었다
할 수 없이 부소산 앞 추수 끝난 들판에 쌓아 놓은 짚더미 속에 짚 동굴을 만들어 셋이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서로의 얼굴을 보니 콧구멍이 시커먼 어디 길바닥에 깡통 하나 놓고 앉아 있어도 될 정도의 몰골로 변해있었다
지금부터 돈은 최소의 경비로 살아야 된다

부소산 입장료가 아까워 당시엔 허술한 철조망으로 담을 해놓아 개 구멍 찾기가 쉬웠다
그렇게 이른 아침 부소산에 올라 군량미 탄 군장터와 3천궁여의 혼이 서려있는 낙화암 그리고 삼천궁녀의 넋을 기리는 고란사를 처음으로 백제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아마 나는 이때부터 역마살이 들어 세상을 주유하고 싶은 내면을 누르지 못했는가 보다

내가 아는 노래도 방랑시인 김삿갓만 알고 있으니 천상 내가 바로 허삿갓인가 보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없는 이 거리 저 거리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이렇게 세상이 싫은가요 벼슬도 버리고 세상을 떠도는 김삿갓을 생각하며

부소산성의 둘레를 걷고 고란사에 들려 백마강 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 나온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의 종소리가  들리어 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아아 아  달빛어린  낙화암의 그늘속에서  불러보자  삼천 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 울면  계백장군 삼척검은  님 사랑도 끊었구나
아아아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 궁녀를"
그렇게 부소산성 관람을 마치고 인근 인심 좋은 해장국 집에서 주린 배를 채우고 마당에서 세수도 하고 다시 여행을 한다
저녁때 이리역에서 순천행 완행열차를 타고 맨 앞에 한 친구가 맨뒤에 나와 다른 친구가 타고 간다

중간쯤 역무원이 표 검사하러 온다고 앞쪽에 있는 친구가 뒤로 와서 알려준다
우리는 입장권만 구입하여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시 앞에 가서 뒤로 밀려오면서 보니 화장실은 검표를 하지 않는다 셋이서 화장실에 숨어
혹시나 들킬라 조마조마 가슴 쓸어내리고..
그렇게 새벽에 순천역에 내려 두리번거리는데 우리 같은 사람 두 명이 철길 따라 막 뛰어간다
우리도 무작정 뒤따라 뛰어가니 큰길로 나오는 개 구멍이 있다
춥지만 시원한 기분으로 순천역사를 빠져나와 분식집에서 떡라면 두 그릇으로 나누어 먹고 순천 여행을 하고

지금의 배정도 되는 크기의 붕어빵을 200원어치 20개를 사서 나누어 먹고 순천 여행을 뒤로하고 마산으로 와서
마산 고속 터미날에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구마고속버스 버스표를 사고 나니 남는 돈이 달랑 60 원
당시 시내버스가 120 원할 때니까

그렇게 무계획 무작정 떠난 삼남지방 일주 불안 불안하였고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지만 그것이 낭만이고 재수를 위한 마음 다짐이었다고 위로하며 돌았었다

아마 우리를 보며 에이 이놈들이라고 손가락질도 하였을 테니까

당시에 우리 세 사람은 대학에 떨어진 부끄러움을 잠시라도 도피하며 잊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리라

철부지 시절의 철부지 행동을 한 그때의 생각을 떠 올리면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그것이 낭만이요 젊음이라생각한 철없는 시절 그 시절이

젊음과 추억을 가장한 내 스스로 아집에 빠진  부끄러운 나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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