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바우

절에... /구흥서

빈손 허명 2022. 2. 16. 15:11

절에 갔었습니다

부산 범어사 에 갔었지요

우리나라 10대 절에 든다는 그 절에 가기 위해 초행길을 거침없이 달리는 것은 차에 달린 내비게이션 때문입니다

그 녀석은 아주 친절해서 앞서 가야 할 길을 미리미리 알려주고 있습니다

 

절에 왜 가느냐 물으시면 그냥 이렇게 대답하기로 했습니다

"절(折) 하러 가지요.."

살아가면서 나는 꺽을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나를 꺽을 일이 없다는 것은 세상살이에 서 당당하려는 의미도 있구요 너무 험한 세상에 꼿꼿이 서서 가도 제대로 가지 못하고 굽고 휘일듯해서 이지만 나 자신은 꺾으면서 생기는 내 속에 평화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나를 꺽는 것

내 자존심을 꺾고 내 희망을 꺾고  내 살아가려는 의지를 꺾으라는 것은 아니지요

다만 내 속에 숨쉬는 것들 중에 아집과 망상과 교만 같은 것들을 꺾어 겸손을 배우고 배려를 배우려는 것임을 알기에 절에 가서 꺾어 주고 올 때 마음은 너무 편합니다

마음이 편하다는 것은 나의 마음속에 자유로움 즉 내속에 찌든 것들을 훌훌 털어냈었기 때문이지요

절에서 맞는 바람은 다른 곳에서 맞는 바람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마음을 비우고 맞는 바람이라 더 욱더 시원하고 더 편안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늘 살아가면서 채우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그 시간들을 보낼때 이룩하려는 것에 대한 기대치가 가슴을 채우고 그 채움이 욕심이 되기도 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부처의 눈에서 광채가 나고 부처의 입에서 소리를 듣습니다

내 마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들을 비우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상실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더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은 이기면 잘하는 것이고 지면 바보 취급을 받는 외형적인 것들로 잘잘못과 성공과 실패를 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쓸데없이 자란 자존심을 꺾고 내 살아가는 동안에 이기심을 꺽고 바라보면 바라보이는 대상이 너무 편안하고 행복하지요

부산 동래 범어사 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꺾으려 온듯했습니다

부처님 앞에 서 더 많은 것을 버리려는 사람들이 모두 부처의 자비를 조금 더 받으며 버리려는 작은 욕심으로 법당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나는 밖에서 그냥 합장을 하며 마음속으로만 꺾었습니다

절을 하지 않았다고 꺾여지지 않은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꺾여진다는 것은 외형 적인 것 이 아니라 마음속에 무형한 상태이기에 내 마음에서 나의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꺼내 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꺾임이 순간뿐이고 다시 자라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꺾이고 다시 서고 다시 또 꺾이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작아질 수 있다는 신념을 얻었습니다

 

공양간에서 줄을 서서 밥을 퍼 담다가도 양보를 해 달라는 어느 보살의 작은 탐욕을 보았고 게걸스럽게 많이 퍼다 놓고 먹는 걸승 같은 사람의 모습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것들을 보았습니다

자신을 꺾는다는 것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기에 가는 절마다 꺾으며 꺾여지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녀옵니다

부처를 보는 것보다는 절 주변의 풍관을 더 좋아하는 게 사람의 작은 행동이겠지만 그래도 부처를 뚫어지게 바라볼 수 없어 그냥 스치듯 바라본 얼굴엔 인자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네 스스로 네가 하는 것"

 

부처가 말을 하듯 했습니다

"네가 깨닫고 네가 부처가 되는 것" 이기에 네가 먹고 네가 살다 보면 네가 깨달을 수 있고 깨달으면 너도 역시 부처 가 되는 것 이라며 반쯤 감은 듯한 눈으로 내려다보았습니다

절에 가면 마음이 가볍습니다

각각 곳곳의 절엔 부처가 있고 그 부처는 부처마다의 꺾음을 말하지 않지만 꺾음으로 오는 마음의 행복을 말해 줍니다

범어사에서 마음을 꺾고 내려오는 발길이 가벼웠습니다

무언가가 잘 될듯한 그런 마음이지요

살아가면서 무거운 짐을 조금 벗어 놓고 오는 홀가분함이라면 어떨지 몰라도 그 가벼움에 대한 자유로움은 아마도 한참 뒤에나 알 듯합니다

 

돌아오면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부처가 있는 대웅전에서 합장을 하고는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인연을 아쉬워했습니다

생전에 다시 만나는 것은 전생에 수만 번의 인연의 연으로 만난다 하였기에 돌아오면서 나를 스쳐지난 사람들의 인연을 생각했습니다

지금 나를 생각하며 나를 사랑하며 나를 기다리는 가족 들과 이웃들 의 인연은 참으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의 연으로 미움도 반가움도 있는 듯합니다

 

지금 나의 삶이 전생에 내가 한 것 같은 연으로 사는 거라는 부처의 말 대로 나는 지금의 인연으로 다음 생에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궁금합니다만 더 좋은 인연만을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나를 꺾으며 비우며 배려하며 양보하며 살려합니다

더 좋은 만남을 위하여 더 많이 사랑하고 배려하고 살 수 있는 것

그것은 참으로 다음 생에 올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봄이 깊어갑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도 이렇듯 흘러갑니다

 

범어사 에 는 봄볕이 가득했습니다

그 따스한 봄볕 속에 나의 꺾음이 아주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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