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때는 가끔씩 정말로 지나간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 이 밀려 올때가 있다. 세월은 육신에 무게를 더해 많은 것을 멈추게 하거나 할 일 들을 잊게 해준다. 청춘 그 시절은 철 은 없었지만 그시절에 만나는 시간은 정말로 아름답고 활기찬 숨가쁜 시간이였다.
그 시간중 에서 제일로 가고 싶은 것은 30대 후반의 시절이다. 농삿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시골에서 문화적인 혜택같은 것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라난 시간은 자연과 함께 본능적 으로 먹고 사는 것 뿐이 모르던 시간 이였다면 군대도 제대하고 직장의 시간도 끝나고 막 자영업 으로 작은 사무실을 차렸을 때다.
경희 대학교 시설과 에서 건축사 면허증 을 따고 삼성전자 로 옮겼을 때 밤낮없이 일하던 고단한 보람의 시간 보다는 조금더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이였다.
신혼 초 아내는 언제나 남편은 늦은밤 에 야 집에 돌아오는 것 으로 착각 을 할 정도의 바쁜 시간들 이였다 삼성 이라는 기업이 일 을 시키는 방법은 어찌면 보이지 않는 경쟁심과 의욕 그리고 부단한 노력 을 경주 시키는 것이 제일 앞에 와 있는 듯했다. 새벽 6시 출근을 하여 밤 12시가 넘어야 집 앞에 서서 초인종을 눌렀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수원 갈비집 에 모여 회식을 하고 집으로 오면 늘상 12시 가 되었으니 아내가 처음 접한 신혼의 시간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시간을 보낸다고 착각을 할 정도였다. 나는 그때 (덧치 페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직원들이 모두각각 의 월급 에서 배분된 금액을 나누어 계산을 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합리적이다" 라고 생각 했었다
건축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첯번째 일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 큰형님이 고향에서 오랬동안 관광 사업을 하셔서 친구분들이 많았다. 그중에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박광* 이라는 분이 30평 형 단독주택 을 의뢰 하여 밤세 열심히 그려 처음 군청에 내이름 으로 건축 허가서 를 제출하고 받은 보수는 그때 돈 3만원 이였다. 5급 공무원 의 월급이 3만원 할 때이니 단한 건으로 그들의 월급만큼의 수익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 하나둘씩 일감이 늘고 이곳 면단위 가지의 도로변 개발이 시작되어 참으로 열심히 일을하고 수익을 얻었다. 아내는 그시절을 제일로 좋아 한다며 가끔씩 그시절의 이야기를 할때는 제일 기분이 좋은날이다
세상을 알아 가는 눈이 떠지며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 과 우정을 나누고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에 수장이 되고 선배들이 장래 촉망받을 사람으로 지명을 하여 하나하나 감투를 쓰고 나서 부터 나는 내 세상의 환영에 빠져 살았다. 어디를 가도 이름만 대면 모든 것을 구입할수 있었다. 그것은 내 신용도 가 이름 석자로 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나의 이름은 언제나 많은 화제를 올려놓고 있는 시기였다. 어떤 음식점 에서는 내가 아침을 개시 해주면 장사가 잘 된다며 전화를 걸어 밥을 먹어 달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늘 많은 사람들 의 선망이 되었던 시절속에서 나는 나의 한없는 기질을 펼쳤다. 자유총연맹지부장 을 맏았는 데 비.비.에스 지부장 도 겸임 하라해 두 어깨를 내놓고 정말 열심히 전국에서 최고의 단체를 만들어놓았었다.
매년 불우 청소년 들을 모아 위문잔치 를 해줄때 유명 탤런트나 가수를 초청하여 군민회관 에는 언제나 여고생 팬들이 가득 했었다. 내가 부르면 달려오던 유명인들 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이곳 특산물인 도자기 한 점씩 선물로하고 주체적 으로 주선을 한 호형호제 했던 탈랜트 도 이제 세월의 뒤란으로 이름을 숨기고 있는 지금 이지만 그 시절은 말 한마디면 못이룰 것이 없었다.
지역 기관장 들과의 우정도 돈독하여 매월 정기적인 모임을 주선하여 우정을 나누었고 지역 공장장 들의 모임을 주선하고 그 모임에 정치인 을 불러 앉게하면 무척이나 좋아 했었다. 지역 공장장 들과 불우청소년 을 연결시켜 자매결연식 을 성대하게 할때 많은 유지들과 기관장들이 찿아와 격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위문잔치 를 할때는 매년 400 여명의 청소년에게 겨울파카 를 사서 선물했다. 그 배용으로 ..아마 다른 곳에 투자를 했다면 ..하는 철없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늦게 또 집으로 고속도로 를 달려 올라가서 잠시 눈을 붙이고 새벽에 내려오는 세월은 고단 했지만 지금 문득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다.
면 단위를 방문하면 그 지역 청년 부녀회원 들이 환영푸랭카드 를 걸어놓고 솥을 걸어 돼지를 잡고 불을 피웠다. 나는 각각의 지역 을 돌아가며 그들에게 금일봉 을 전달하고 그들이 준비한 모임엔 이곳 기관장들 을 같이 초대를 하여 각각의 면단위 에선 그시간이 제일 큰 잔치처럼 행사가 되어 그곳 유지들이 줄을 서서 손 이라도 한번씩 잡고싶어 하는 시절이였다. 돌아 갈수없는 시간은 참으로 순수한 시절이였다. 지역 국회의원, 지청,지원 장, 경찰서장, 군수, 교육장..그리고 그들과 마신 술과 큰 웃음은 이미 내 몸에 배여있었다. 지금도 가끔은 그 시간의 흔적이 남아 나를 반기는 어떤 사람에게 그때 그마음 으로 돌아가 있다 가 잠시 행복한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태풍이 올라온다며 하늘이 흐렸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지나온 시간을 간직하고사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 추억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나 같다. 나는 지나온 추억을 꺼내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다가 보다가 현실속에나를 생각 하고는 쑥스러운 혼자만 의 웃음으로 때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추억은 부질없는 것은 아니라 해도 다 소용없는 허세가 아니 였을까? 자신을 알리고 남들 앞에서 조금 우러러 보이고 싶은 공명심 과 자랑하고 싶은 속된 마음때문 이리라 .
그래도 나는 지나온 시간이 많은 것들을 가지고 흘러갔다 해도 나 스스로 의 자부심 에는 변함없는 무게를 두고있다. "나는 나다" 라는 자부심 과 아직도 얼굴을 당당하게 들고 ..아니다 나는 이미 뒷방 으로 물러난 시간만이 소유 했기에 젊은 사람들 에게 그자리를 내어주고 조용이 참선 하듯 살아가며 어느 멋진 사람하나 소통의 창구로 만들어 놓고 갑갑한 마음을 나누며 작은 행복에 취한 늙으니 이다.
혼자 웃는 다. 그 시절이 그립다가도 나를 돌아보면 인생은 소리없이 사라지는 구름 한조각 이 라 생각한다. 가끔은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들역시 세월을 뒤로하고 이름없는 시간속에 들어가 있어 만날수도 없고 만나려 해도 그들의 삶의 조건이 만날수없는 것들이 존재 할듯해 마음속 으로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부처님 전에 기도 하기도 한다. 그 시절을 무던히 견디고 아직도 내곁에서 세끼 밥상을 차려주는 내 아내에게 제일 고마운 마음이다. 아마도 아마도 내 그때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로 못가게 한 유일한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내 뿐일 것이다.
'**심신수양** > 바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빛 가득한 날에/구흥서 (0) | 2021.09.16 |
---|---|
바람 같은 것/구흥서 (0) | 2021.09.15 |
길(뒤도 돌아보지 말고..)/구흥서 (0) | 2021.09.15 |
눈부신 시간/구흥서 (0) | 2021.09.14 |
바다는 밤이면.../구흥서 (0) | 2021.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