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나의 일기

용천사와 오늘

빈손 허명 2023. 6. 11. 21:25

오늘은 필우친구가 사위를 보는 날이다

대구 범어 로타리 호텔에서 예식이라 아내를 대동하고 갔지만 예식장에는 나 혼자 들어가 혼주를 보고 하객으로 온 친구들 잠깐 만나고 돌아서 나왔다

아내가 가창댐으로 드라이브 가자는 언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천대로를 통과하여 가창댐으로 접어드니 녹음이 우거진 숲 동굴같은 길이 이어진다

천천히 숲길을 즐기며 점심을 전하나 먹고 국수 한그릇 하자고 하며 청도 재를 넘어 왔다

과거에도 와본적이 있는 용천사에 들렸다

입구에는 할머니들이 몇명 보따리를 풀어 놓고 갖가지 나물과 농산물을 팔고 있다

멀리서 보는데도 아내는 쪼르르 달려가며 죽순 사가자고 한다

주위경관을 감상하며 멋진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언제나 변함없는 늘 푸른 소나무에 매료되었다

아내가 죽순을 두봉지에 만오천원에 사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돌아 나오는데 할머니 모습이 애처러워 마음이 짠하다

꼬부랑 할머니에 세월의 흔적인 깊게 패인 주름... 언제나 이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세월을 보내는 이분들의 마음은 아떨까? 어둠이 내린 지금 그 할머니는 깜캄한 방에 홀로 외로움을 달래고 계시는건 아닐까?

기쁜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내가 좀 미안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평소 죽순을 좋아하여 늘상 죽순죽순 노래를 불렀는데도 사주지 못하였으니...

나는 그다지 죽순 요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죽순 두봉지를 들고 해맑게 웃는 모습에 다음엔 죽순이 나오는 철에는 한보따리 사주리라 생각을 한다

용천사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찬건한 약 1400여년된 유서깊은 절이다

곳곳 세월의 흔적이 보인다 다른 절에는 단청을 새로 하여 새로 지은 절 같은데 여긴 빛바랜 단청이 더 친근감이 있고 오래된 문화재의 가치가 높은것 같다

우리의 역사적 가치나 문화재관리적인 측면에서 단청을 새로 하는것이 좋은지는 나는 알지 못한다

개인적인 나의 생각은 옛 선조의 흔적이 그대로 보여지는 용천사의 모습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얼마전 다녀온 일본의 사찰들은 벗겨진 그대로 세월... 세월과 함께 지나온 그 역사가 보였다

대웅전의 부처님이 인자하게 웃는 모습에 마음이 편안하다

법당의 불상은 하나같이 바라보면 볼수록 신비한 미소에 아름다운 선한 모습이다

용천사 뒤로 병풍처럼 둘러산 산에는 소나무가 사철 변함없이 천년 고찰을 지켜주고 감사 주는 듯 하다

용천사를 관람하고 나오는데 허기가 온다 

절 입구 전과 국수집이 보여 들어가 전을 하나 시키고 잔치국수를 주문하였다

내 엄마같은 할머니가 전을 부치고 국수를 삶고 아들이 손님상에 음식을 내어 놓는다

음식은 손 맛이라 했던가

전 맛에 내 엄마 생각과  모습이 보이고

벌써 엄마 가신지가 37년... 참 어떻게 지나간 세월인지 모른다

바쁘게 정신없는 이 세월이 아쉽다

밖으로만 다니는 외향적인 아부지 만나 평생 과부아닌 과부로 사시다가 59세 많지 않는 나이에 먼길 가신 내 엄마

오후내내 나는 엄마 생각에 말수가 줄었다

그때 고생만 하신 내 엄마를 보며 나는 내 아내는 절대 불행하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다지고 다졌었다

아내에게 마음 아프게 하지 않으리라 라고...

나는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아내에게 행복한지는 묻지 않았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 간다

내일은 또 6월도 중순으로 달려 가고

달려가는 세월속에 모든것이 함께 감에 무게를 줄이자 먼길 가는 길에 가볍게 가볍게 달려가자

사랑하는 사람들과 손잡고 같이 달려가자

 

일연선사가 편찬한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큰 보배요자산이다이것이 어디에서 집필되고 편찬되었는가사실 아쉽게도 거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그러나 선사의 연보를 고려하면 청도에서 집필되고 편찬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삼국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도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청도는 이 주장들을 적극 수용하고 입증하여 청도의 귀한 자산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청도군 각북면 비슬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약 14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 용천사 입구 안내문 중 이러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일연선사께서 비슬산에 마지막 머문 곳이 용천사였다. ‘삼국유사의 원고를 이곳 용천사에서 탈고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277년 청도 운문사 주지로 옮기어 그곳에서 삼국유사가 편찬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아낸 삼국유사’ 원고를 일연선사가 청도 용천사에서 탈고하고 그 이후 운문사에서 편찬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대목이다이는 근래, ‘삼국유사에 대해 경북 군위군이 인각사가 삼국유사의 산실이라고 하면서 아예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라 명명하여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이에 따른 여러 가지 사업도 벌이고 있는 것과 완전 배치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용천사 탈고운문사 편찬’ 설의 진위를 차치하더라도 군위의 삼국유사 산실’ 설도 생각할 점이 있다일연선사가 군위 인각사에서 말년을 보내고 입적을 했으니 집필과 편찬을 했다고 주장을 할 수도 있다그러나 그 머문 시기가 79세부터 입적을 한 84세까지이다한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 모은 자료를 말년까지 정리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거니와 고령이기도 하고 이때 효심이 많은 그가 노모상까지 당한 시기였는데 그럴 경황이 없었을 것 같다.

  당시 고려는 몽고의 침입 등 전란으로 민중들이 민족적 자긍심과 정신적 중심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을 때이다일연선사는 그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껴 민중들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었을 것이다이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많은 기록의 대부분은 현지답사를 통해 자료를 찾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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