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km의 공산성을 돌아보고 송산리 고분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송산리 고분군의 백제 무령왕릉을 관람하러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 고분은 서울 석촌동·구의동 일대의 것과 공주의 송산리 고분군, 부여의 능산리 고분군 정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주인을 알 수 있는 무덤은 없었다. 그런데 백제사 연구에 있어 아주 중요한 발굴이 1971년 명문이 적힌 지석의 발굴로 인해, 송산리에 있던 한 고분이 바로 무령왕릉임이 밝혀졌다.
무령왕릉은 중국 육조의 전실분(塼室墳) 계통의 전축분으로서 앞면 중앙에 짧은 연도(羨道)가 달렸으며, 천정은 아치형을 이루고 있었다. 백제 고분으로서 전축분은 특수묘제로서 전축분의 등장은 중국 남조의 전통이 상당히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무령왕릉 발굴에서 중요했던 것은 지석의 출현이었다.
지석이란 죽은 사람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하여 묻은 판석이나 도판(陶板)을 말한다.
무령왕릉의 지석 앞면에는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인 백제 사마왕(斯麻王)이 나이 62세 되는 계묘년(523년) 5월 병술 그믐 7일 임신에 돌아가셨다. 을사년(525년) 8월 계유 그믐 12일 갑신에 이르러 안장하여 대묘에 모시고 다음과 같이 문서를 작성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왕의 지석 전면에는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사마왕(斯麻王) 등의 관작과 왕의 생몰연대가 나오고, 뒷면에는 상을 치룬 내용 등이 보인다. 왕비의 지석에는 토지신의 명칭과 매지(買地)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무령왕릉에서 지석이 나옴으로서 백제 송산리 고분 가운데 정확한 피장자의 이름을 알게 되었으며, 그 당시 정치사와 매장풍습 및 매지권과 관련된 내용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