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퍼온 글

그대는 어느 때 글을 쓰는가?

빈손 허명 2023. 1. 24. 20:44

그대는 어느 때 글을 쓰는가?/신정일


사람은 어느 때 우는가? 그 물음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사람이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초정 박제가였다.
“슬픔이 지극하면 우는 것이지 어찌 미리 울려고 마음먹어서랴” 그의 말처럼 슬픔이 지극해지면 흐르는 것이 눈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글은 어느 때 쓰는가? 그 물음에 답한 사람이 명나라 말의 걸출한 사상가인 이탁오였다.

“세상에서 진정 좋은 문장을 쓴 사람들이, 처음부터 모두 글을 쓴다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 가슴 속에 무어라 할 수 없는 이상한 것이 있고, 그 목에 토하고 싶지만 토해낼 수 없는 그 어떤 것이 있고, 또 그 입에 말하고 싶지만 말 할 수 없는 것이 있어, 그것이 아주 오래 쌓이게 되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아침 풍경을 보고 감정이 일어나고, 눈길이 가는 곳에 탄식이 나오면, 다른 사람의 술잔을 빼앗으며 내면에 쌓인 울분을 풀어내게 된다.
마음속의 불편을 하소연하게 되고 세상에서의 자기 운명이 기구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옥구슬 같은 문장을 토설하여 은하수처럼 빛나는 문체를 지어놓고 자부하면서도, 발광하고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그칠 수 없게 된다. 이런 모습을 보고 듣는 사람에게는 이를 갈고 어금니를 씹으며 그를 살해하고자 솟구치니, 그는 마침내 명산에 몸을 숨기고 물이나 불 속에 자신을 던지려고 하는 것이다. “
이탁오(이지李贄)의 잡설雜說<울분과 통곡에서 글이 나온다.>의 일부분이다.“

누가 글을 많이 쓰는가? 세상에서 가장 한恨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쓴다고 한다. 아니 글을 쓰고자 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한이 풀리면서 글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라고 할까? 물이 흐르듯 슬픔이 넘쳐 눈물이 나오듯, 그런 글을 써야 하는데, 그런 글이 아니라 짜내는 것처럼 억지로 글을 쓸 때가 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 그런 때는 가만히 먼 산을 보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세상을 관조해야 하는데, 조급함에 길이든 알량한 영혼은 이도저도 못하고 서성거리기만 한다.
마음을 잠시 놓아 버리고 어슬렁어슬렁 세상을 소요할 수는 없을까? 저절로, 저절로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쓰여 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글이 아닐까?
그런데도 나는 지금까지도 약간의 쓸쓸함으로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갈망이 솟구쳐 오를 때 마음에 드는 글이 써진다.

그대는 어느 때 글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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