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나의 일기

엄마생각

빈손 허명 2022. 3. 6. 10:57

어릴적 철 모르고 떼쓰는 아들 성화 다 받아주고 청년기에는 힘들게 살아 여력이 없어 무관심하고 조금 형편이 되어 돌아보면 먼길 가시고 안 계신다는 엄마...

모든 아들들이 그런다고 합니다

나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어릴때는 순하디 순하여 혼자 잘도 놀았다고 합니다. 학창 시절까지도 특별히 엄마 속을 썩이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군대 입대하자마자 사업하시다 부도난 아버지.... 생활비는 끊어지고 나라의 몸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너무나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대구 사대부고 다니던 여동생이 자신의 꿈을 접고 지역의 야간 고등학교로 전학을 하고 낮에는 방직공장에 나가 엄마와 생계를 꾸려 나갔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고생한 여동생과 엄마.

내가 해병대 만기 전역을 하고 하루도 쉬지 못하고 건설현장의 콘크리트하는 곳에 질통을 메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을 때 엄마의 속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제대후 3개월 현대중공업 직업훈련원에 입소하여 직장을 다니며 엄마 생활비 드리는 것으로 나는 자식노릇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내 엄마 金龍道는 열일곱 소녀때 열여덟 소년에게 시집와서 철부지 소년의 아내로 힘들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부자집에 시집와서 살았지만...

어느 시점 남편은 당시 군대 가지 않으려 재산을 두 번에 걸쳐 왕창 날려 버리고..
결국엔 남편을 군대로 보내고 자식들 홀로 키우시고...

땅 보상 받으신 돈 사기꾼에 날리고 자책하신 엄마... 그 후
남편 제대 후 집에서 양송이 농사를 3년 정도 지을 때까지만 해도 엄만 행복하였습니다(이때가 엄마 인생 제일 행복 한때라 생각합니다)

그 후 남편은 사업한답시고 객지로 다른 여자 얻어 집에는 등한시하고 과부 아닌 과부로 자식들을 키우며 외롭고 쓸쓸하게 살았습니다
오로지 자식들만 보면서...
그 긴 시간을 지나면서 하지 않으시던 담배와 술을 친구 삼아 외로움을 달래며 이겨 내셨지요

육군 상사 군생활 19년은 그래도 휴가시 1년에 몇 번씩 만났었지만 그 뒤 15년여는 오로지 청상과부로 살아오신 엄마

우리 자식들이 좀 더 엄마 맘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우리가 힘이 들었다는 것 어려웠다는 것은 자식들의 자기 위안적인 변명으로 밖에 되지 않습니다

혀가 굳어져간 병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르는 병으로 못 먹어 굶어 돌아가신... 다시 생각해도 눈물 나는 사실입니다

(장례 치루고 방을 정리할 때... 장롱 밑에 구멍이... 연탄가스를 지속적으로 마셔서... 그렇게 된 것이라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병명도 모른 채 오랫동안 투병하다 혼자 쓸쓸히 59세에 먼길 떠나신 엄마

1987년 8월 15일 내가 결혼하기 1년 전의 일입니다

우리 형제들... 모두 큰 죄인입니다..

나 또한 며느리 밥상 한번 올리지 못한... 더 큰 죄인입니다

 

45년 전쯤 압량에 쌀가게 영감님이 있었습니다
짐 자전거에 곡물을 싣고 집집마다 배달해 주고 동네 어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고민을 풀어 드리려 하시는

키는 작으만 하시어도 몸은 포대화상처럼 인자한 모습이었습니다

내가 고1 때인가 그 시절이었다고 기억됩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 그 자전거가 대문 앞에 세워져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외로운 내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주시어 엄마가 좀 덜 쓸쓸하고 좀 덜 외롭기 때문입니다

내 엄마와 마루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시는 모습을 볼 때 "아 이분이 내 아부지였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의 그 일이 내가 나이 많은 형들과 아버지 같은 나이 많은 분들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좀더 자주 오셔서 엄마와 친구 되어주시지... 그렇지만 그분은 쌀가게를 하시어 배달 때만 오시니 그건 제 욕심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분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다 지나간 세월입니다


내 새로운 인연께서 매주 절에 가서 어머니 천도재를 올려라 합니다

나의 부족한 부정을 채워주시려 자청 내 아부지를 해주시겠다고 하신 이 인연께서는 아내가 매일 새벽 5시 30분부터 2시간 새벽 기도를 한다 합니다

엄마 천도기도와 가족 건강 발원을 한다 합니다
그 기도를 45년여를 해오고 있다 합니다
대단한 불심이요 정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정성이 부처님을 감동하여 모든 것이 잘되는 것인가 봅니다

며칠 전 카톡으로 엄마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의부님은 눈물을 훔치시며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걸... 하시며

내 김용도 엄마 극락왕생 천도기도를 하라고... 매주 절에 갈 때 부처님 전 보시함에 보시를 하고
"김용도 극락왕생 발원을 세 번씩 하라"하십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렇게 살아 가는 것이 엄마의 보살핌으로 지금 이렇게 애들이랑 잘 살고 있으니

부처님 전에 죽을 때까지 천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의부님 말씀을 지키려 마음먹습니다

과거 어려울 때나 지금이나 생각해 보니 많이 반성합니다.

맘속 깊이 내 엄마를 간직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젠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모셔두고 남은 평생 생각하며 살 것이라 깊이 다져봅니다

"엄마 극락왕생 발원!"  

"엄마 극락왕생 발원!"

"엄마 극락왕생 발원!"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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