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얼마나 큰집이 필요한가?
유즘 세태를 들여다보면 욕심껏 사놓은 땅이나
집이 말썽이다.
조금만 그래, 조금만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면
별 탈이 없었을 것인데,
자기 분수를 모르거나 아니면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될 것이라 여겨서
마음껏 했던 일이, 큰 짐이 되고, 남의 입에 오르내리고,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목숨을 끊기도 하고, 패가망신을 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입으로 떠드는 자들, 모두가 도토리 키재기라서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누구를 욕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의 집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방의 넓이는 10홀, 남으로 외짝문 두 개 열렸다.
한낮의 해 쬐어. 밝고도 따사로워라.
집은 겨우 벽만 세웠지만, 온갖 책 갖추었다.
쇠코잠방이로 넉넉하니, 탁문군卓文君의 짝일세.
차 반 사발 따르고, 향 한 대 피운다.
한가롭게 숨어 살며, 천지와 고금을 살핀다.
사람들은 누추한 방이라 말하면서, 누추하여 거처할 수 없다 하네.
내가 보기엔, 신선이 사는 곳이라. 마음 안온하고 몸 편안하니,
누추하다 뉘 말하는가, 내가 누추하게 여기는 건 몸과 명예 모두 썩는 것,
집이야 쑥대로 엮은 거지만 도연명도 좁은 방에서 살았지,
군자君子가 산다면, 누추한 게 무슨 대수랴.”
허균의 산문 <누추한 내방(陋室銘>이라는 글의 전문이다.
작은 집에 살면서도 누추하다고 여기지 않고,
살았던 허균보다 더 호방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성종 때의 문장가이자 풍류객인
홍귀달洪貴達이었다.
서울 남산 자락에 세상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집이 있다고 나라 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한양의 남산에 9만 9,999칸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주택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소문은 팔도에 떠돌았다. 그래서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그 집을 구경하고자 남산을 헤매고 다녔다.
그러다 그 집을 발견하고선 실망이 컸다.
왜냐하면 그 집이 판서를 지낸 홍귀달의 집인데, 허백당虛白堂이란 당호가 붙은 단칸 초막이었기 때문이다.
그 집에 실망한 사람들이 홍귀달에게 물었다.
“이렇게 작은 집을 짓고 살면서 왜 그렇게 허풍을 떨었습니까?”
홍귀달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이 단칸방에 달도 들여놓고, 구름도 들여놓고,
바람도 지나가게 하면서 하루에도 서 9만9천9백99칸에서 할 수 있는 생각을 다 하고 살고 있다네.”
홍귀달의 청빈하면서도 호방한 자연스런 생각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다.
또 하나 재미 있는 이야기가 서린 곳이 동대문구 신설동과 보문동에 걸쳐 있는 마을인
우산각골(우산각리, 우선동)이다.
세종 때 정승 하정夏亭 유관柳寬이 청렴결백하여,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았다.
하루는 비가 오자 방안에서 우산을 받고 있던 부인이 말했다.
“우리 집은 명색이 정승 집인데, 비만 오는 이런 집에서 살아야 하나요.?”
그 말을 들은 유관이 그 부인에게 답했다.
“우리는 우산이라도 있어서 새는 비를 피하지만, 우산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겠소.”
자기 자신도 새는 집에서 살고 있으면서 어려운 백성들의 삶을 걱정하였다 해서
이 마을을 우산각골, 또는 한자로 우산각리라 하였으며, 그 말이 변하여 우선동이라고도 한다.
그는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남길 유산이랄 것이 없으니,
청빈을 대대로 자손들에게 물려주기 바란다.”
한나라의 정승을 지내고 있으면서도 집은 주룩주룩 비가 새는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던 것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삶의 자세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중에 살기가 어려운 백성들을 걱정했다는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가 살았던 초가집에서 살았던 사람이 유관의 4대 외손인 동고 이희검李希儉이었고,
“집은 비를 막는데 족하고, 옷은 몸만 가리면 족하고,
음식은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家足以이 雨, 衣足以이 身. 食足以充陽”라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그는 병조판서에 지경연사라는 벼슬을 겸하고 있었지만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서
친척과 친지들이 돈을 추렴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의 아들이 <지봉유설>을 지은 지봉 이수광李晬光이었고
그는 그곳에 ‘겨우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비우당庇雨堂이라는 집을 짓고 살았다.
오늘의 시대는 조그만 자리라도 차지하고 있을 때 나라 국고는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고
냉킁 냉큼 받아먹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고, 국고를 제 돈 물 쓰듯 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힘도 없고, 빽도 없는 사람들의 한숨 소리만 드높아가고 있다.
이리저리 생각하면 가슴만 답답한데, 언제나 마스크도 벗고, 그런 사람들의 소문도 들리지 않는
시절이 도래할지,
길위의 인문학에서 펀글...
'**심신수양** > 퍼온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운명이 허락하는 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0) | 2022.01.05 |
---|---|
마음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0) | 2021.12.28 |
지나고 나면 세상사 아무것도 아니다. (0) | 2021.12.28 |
이런 대통령을 기다립니다 (0) | 2021.12.26 |
내 웃음 속에 그늘이 숨어 있다니.. (0) | 202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