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 허락하는 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은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 누구나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고 그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만, 그 시간 속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철학자 세네카는 일찍이 행복이 이 지상에서 추구해야 할 최상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았던지 다음과 같이 그 염원을 피력했었다.
“운명이 허락하는 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시간이 성큼성큼 지나가고 하루가 날개가 단 듯 흘러가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기 때문이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면 인생은 다 간 것이나 다름없다. 하물며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얼마나 쓸쓸하면서도 바쁜가? 그래서 허겁지겁 가는 인생길, 그가 누구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던지 마찬가지다.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것을 <월든>의 저자인 소로우의 ‘일기‘ 속에서 엿볼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작가라면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글을 써야 한다. 실제로 남은 시간은 길어봤자 얼마 되지 않는다. 너의 영혼에게 맡겨진 순간순간을 잘 활용하라.
영감靈感의 잔을 최후의 한 방울까지 비워라. 영감의 잔을 비우는 그런 일에서는 어떤 지나침이 있을까 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봄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특히 글이 그렇다. 기억력 떨어지고, 영혼이 맑지 않고선 글이 써지지 않기 때문이다. 글은 그냥 쓰는 것이 아니다. 전쟁터에 나간 전사戰士처럼 ‘전투적戰鬪的’으로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정한 시간 속에서만 쓸 수가 있는 것이 글이다. 그래서 모리악의 말이 가끔씩 나의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줄어든다. 게임이 끝나고 작품이 완성되어 원고가 맡겨지고 인간의 모험이 종말에 가까워 오면 그때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안에서 행동할 공간을 찾아내지 못한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틈입해 들어올 수 없는 동요되지 않는 굳어버린 과거라는 덩어리와 이제 다소 가까이 존재하는 죽음 사이에 끼이게 된다.”
시간을 중히 여기라는 것이다. 글은 특히 영혼이 맑은 그 시간에 가장 좋은 글이 써지는 것이다.
아무도 대신 걸어주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대신 살아주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대신 써줄 수 없는 것이 글이다.(남의 자서전 쓰는 것과는 별개로)
그냥 차일피일 미루다가 보면 남는 것은 항상 ‘말라르메’가 말한 ‘백지의 현기증’만 허공에서 서성거릴 뿐이다.
“한 시간은 그저 한 시간이 아니다. 향기와 소리와 계획, 분위기로 가득 찬 화병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되찾은 시간>에서 했던 말이다.
프루스트의 말과 같이 한 시간, 한 시간이 말 그대로 인생의 전체인 것이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살 것, 그것을 생生은 요구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눈이 아프도록 읽고, 쓰고, 그리고 남는 시간, 살아 있는 사물들을 무한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살 것,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과제다.
길위의 인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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