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뒷뜰에 제법 큰 밤나무 한그루를 키웠다
년전만 해도 몇개씩 달리다가 거름을 듬북 주었더니 몇년새 집높이 보다 더 높이 자랐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나무 아래 나무가 떨군 밤을 줍는 다
가지가 쳐저 어떤 때는 밤송이를 이마로 받을 때가 있지만 조심해서 줍는다
밤송이의 가시는 성질이 고약하여 살속에 파고들면 잘 빠지지도 않고 염증을 잃으키어 고통을 준다
옛 군대 속담에 오죽했으면 밤송이로 뭘..까라면 깐다...라고 했을가?
그렇게 군기가 삼엄하던 시절에 군생활을 했지만 이렇게 당당한 국민으로 할아버지가 되어 아무리 세상이 힘들어도 굳굳하게 살고 있다
이것 역시 밤송이 를 핑계를 댄 군의 기합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줒은 밤을 물로 씻어 삶아주면 아내는 열심히 속을 파내는 작업을 한다
나는 작은 과도로 반을 잘라주고 아니는 그 갈라진 밤의 속을 파낸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똑같은 걸 반복했다
밤 가루를 말려 손주에게 보내주었더니 손주가 잘먹었다 하는 에미의 전화를 받고는 매년 연례 행사처럼 밤의 속을 파낸다
이번엔 밤가루에 잦과 호두와 해바라기 씨를 섞어 꿀과 버무려 송편만하게 만들어 냉동을 시켰다
음식이 상하지 않는 겨울에 소포로 보내주려는 의도인듯하다
명절이 되면 더욱더 쓸쓸한게 시골에사는 늙은 이들이지만 우리역시 아들이 먼곳에 가있고 그 나라 와의 명절이 틀린 관게로 올해도 텅빈 집을 지키고 있게 될것이다
딸아이는 영화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고 해 아내의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여행이나 댕겨 옵시다.."
"어디루요..?"
"뭐..중국이나...남쪽 휴양지로 가지뭐..."
아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영화를 준비하는 딸애가 추석에 왔다 우리가 없으면 얼마나 서운하겠냐 는 게 이유다
얼른 시집을 가야 하는 데 시집갈 생각은 않구 일하는 재미에 빠진듯했다
지난번 개봉한 "뚝방전설" 이란 영화는 꽤 재미를 본듯 도 했지만 스텝인 딸애는 이미 다른 영화사에서 다른 영화를 준비한다고 했다
"뭔영화니..? 제목은 뭔데..?"
"귀부인 달리다..란 코믹영화" 라고 말해주었지만 시나리오도 읽지 못했다
"엄마가 밤따서 너 줄려고 맛난거 만들어 놓았다..언제 올래..?"
"그때 가봐야 해요...아직은 몰라요..10월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거라.."
서울에 있어 만나기 어려운 자식을 한번보려고 서울을 가려 해도 바쁜일정에 만날수가 없었는 데 그래도 추석엔 한번 올게 아니냐 는 아내의 생각에 난, 여행이야기를 포기하고 동해안으로 화제를 돌렸다
"서대염불암 에 들렸다가 속초에 가서 하룻밤 자고 주문진에서 회좀먹고 옵시다"
약수 터를 오르는 길몫에 밤나무가 있는 곳은 그곳을 오르는 사람들이 이미 밤을 다 털어내어 흔적만 남겼다
그래도 떨군 밤을 몇개 주어 아내에게 주었더니 아내는 그 껍질을 잇발로 벗겨내어 내게 주었다
하얀 속살이 작은 도토리알 만해젔지만 입속에서 깨물면 오도독 하고 부서지며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아내가 잇발로 벗겨누는 것은 오래 살며 터득한 이무러움 이다
칼로 벗기는 게 아닌 산을 오르며 몇개 줒은 밤알을 하얀 장갑으로 몇번 문질르고 잇발로 껍질을 벗겨 내어 속살이 나오는 것까지 벗기면서 아내의 타액이 젖어들수도 있지만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받아 입안에 넣으며 작은 행복을 느꼈다
등산을 전문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약수터가 있는 꾀꼴이봉을 오르는 긴 산속 오솔길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천천히 오르며 밤을 까먹는 것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나는 무심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산에오르는 날은 일주일 지난 이야기중에 아내가 제일 기억하는 것을 내게 들려주는 시간이다
평소에는 퇴근하고 저녘을 먹고 연속극보고 운동하고 각자의 스케쥴 에 따라 시간조절을 해야 함으로 산에 오를 때 처럼 한적하고 자유로운 대화시간을 내지 못한다
토요일과 일요일 두번만 아내와 산 오름 으로 아내는 두시간 여의 시간속에 잡다한 주변의 일들을 내게 전달해준다
동네 사랑방에서 생긴 이야기며 친척들의 동향이며 시장에 물건값까지 가다 쉬고 가다 쉬며 들려주는 아내는 이번에는 내가 주워준 밤을 입으로 벗겨 주며 지난주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랫대...?그랫구나...응....잘했어...그렇지...그래야지.."
나는 아내의 말에 맛장구를 쳐주면 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상의 일을 티격거리며 다른의견을 낼 이유가 없다
아내는 매일 동네에 사는 처남댁과 언니를 동반하고 그길을 오르지만 휴일엔 나를 선택한다
오르고 내리는 길을 애써 줄을 매어준 어떤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어제낮에 전화로 들려준 손주의 유치원 이야기도 몇번째 들었지만 싫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무디어 가는 아내의 생활 습관을 같이 채워주고 손잡아주는 게 나의 할일이다
나는 아직 내 일을 하며 내 사무실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을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손위 동서는 시골에 이사를 와 자신의 집 창고를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어 놓고 시도때도 없이 나를 부른다
티비도 노래방 기기도 준비해두고 작은 침실도 준비했다
그리고 평소 하지 못했던 것들을 홀가분하게 하고싶었나보다
노래를 열곡도 더부르고 돌아오지만 동서의 새활방식이 나의 생활 방식과 달라 그렇게 내키지 않는 다
그러나 아마도 내가 산을 오르며 아내가 입으로 벗겨준 밤알을 받아먹듯 한 행복은 느끼지 못할것이다
오랜 시간 동화되어 가는 세월을 참 하고 조리있게 유지해온 나의 결과라 생각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고 딸을 믿고 살며 이웃과 탈없이 지내고 선후배에게 티나지 않게 지내온 내가 살아온 결과다
오늘 아침에도 많은 밤을 주워 왔다
돌아서면 또 떨어지고 돌아서면 또 떨어지는 것을 줍고싶다가도 "나만먹나...다람쥐도 먹어야지..." 하면서 집으로 들어왔다
아마도 저녘을 먹고나면 또 나는 밤을 칼로 자르고 있을 것이고 아내는 속을 파내며 말할 것이다
"민영이가 유치원에 가는 걸 좋아해서 토요일엔 안달이라네요...지금 이걸 보내면 상하겠지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할것이다
"그랫대...?그녀석 참..!! 얼렸다가 겨울에 보내줍시다...잘먹을 텐데.."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갈것이고 우리는 잠자리에 누우며 말할것이다
"또 하루가 갔네....잘자 ..좋은 꿈꾸고.,..내일 아침에 봅시다.."
2006년11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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