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을 생각하며~~
구흥서
창밖을 보아야 비가오는 것을 알수있다. 비오는날 이라 외출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 있다보니 밖의 사정을 모른다.
비오는 날 잠시 강가 돌무더기를 밟았다. 예전 이곳 수석회 회장을 맏은적이 있었다.
한때 야망을 품고 이곳저곳 의 모임을 섭렵하여 모임을 많이 갖고 있었다. 얼굴을 보고 같이 식사를 하고 술도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소음처럼 나누던 시간이다. 그 소음속에서 친구는 더 돈독해지고 어떤 사람은 조금더 멀어지기도 했지만 모임은 참으로 중요한 소통의 자리였다.
모임도 수도없이 만들었다. 모임을 만들면 그모임을 주선한 사람의 면모를 알수도있고 모임을 주선한 사람의 위치나 실력이나 사회적으로 어떻한 조건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그모임의 성패를 같이한다. 그중에 하나가 석우회 라는 수석 모임이였다. 회원을 모집하기전에 먼저 몇몇의 맘이맞는 사람들과 의 조우였다. 그러다가 하나하나 를 더 모이게 하다보면 "우리 이러지 말고 매달 만나 탐석을 가서 더 돈독한 회의를 만들자" 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고 그로인해 그모임은 매달 한번씩의 정기모임을 가지게 된다.
그 모임 역시 지역의 유수한 회원들이 가득하게 되고 그또한 어떤 실력자나 그 실력자를 배경으로한 권위적인 색갈을 뛰우게됨 으로 더욱더 빛을 발하게 된다.
탐석을 하러 나가면 마음이 맑아지기 때문에 가끔이지만 강가에 나가 탐석이 끝나면 모여 앉아 고기를 궆고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화기를 더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수석은 이세상의 자연이 만들어낸 단하나의 돌이며 작품이라는 말로 마음을 모았다. 좋은 수석을 몇개 모으고 그로 인해 전시회를 열었을 때 각각의 회원의 소장품 들이 처음 선을 보였다.
이곳은 문화의 전시를 볼수없었던 낙후된 곳이였다. 내가 처음으로 수석 전시회를 준비하고 장소를 섭외할때도 군청이나 교육청 같은 곳외엔 큰 장소가 없어 마침 종교단체인 여광원 이란 곳 의 원장님을 잘알아 그곳 강의실에서 개막을하게 되었다.
큰 마분지에 회원인 미술학원 원장의 솜씨로 포스터를 만들고 각각의 관공서나 학교 기관 등등에 붙이게 하고 각기관장들에게 일일히 초대 편지를 써서보냈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 과 지역유지 라는 사람들 에게도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어 전시회는 성황리에 마무리 했다. 전시회라는 것을 처음열게된 나역시 준비를 철저히 했다. 카셑 녹음기로 음악을흐르게 하고 한쪽엔 칵테일 바를 만들어 오는 유지나 기관장들 에게 음료등을 건네주니 그들역시 기분이 좋은듯 전시회가 끝나고 자자한 칭찬과 찬사를 들었다. 그후 매년 우린 탐석을 나가고 전시회를 열어 이고장의 아름다운 수석을 땅에 뭍혀 버려짐 을 막을수 있었다.
비오는날에 탐석을 나간다니 아내가 말렸다. 아내를 설득할때 아내의 조건은 하나였다. 돌밭에가서 김치누름 돌 을 가져오라는 것이다. 그 조건 이라면 별것아니다. 아내는 오이지 를 담그거나 다른 절임음식 을 만들때 얇고 무거운 돌로 눌러둠으로 장만되는 음식의 맛을 즐겨왔기에 이사할때 많던 것을 버리고 온것을 아까워했다. 우산을 쓰고 나선 강가의 돌무덤은 공사용 으로 돌들을 퍼간뒤라 깨어진 돌들이 가득했지만 몇몇개의 아내를 위한 돌을 주어들고 웃었다. "겨우 이런 걸..."
수석은 너무커도 않되고 너무작아도 수준급에 들지 못한다. 한자 이내의 단단한 오석이 최고의 품질이며 주름이 많고 마르고 구멍이 뚫리고 못생긴..그리고 동물의 형상이나 자연경관의 모습을 닮은 것들을 좋은 수석으로 치기도 하지만 각각의 취향에 따라 다름이 있다. 나는 추상석 을 좋아했다. 묵직한 오석의 튼실한 것을 책상에 놓고 매일 그것을 쓰다듬으며 일과 건강을 발원했다.
돌과도 인연이 있다. 돌도 그 인연을따라 자리를 옮겨갈때도 있기에 나 역시 나이들어 내자리가 변변치 않을때 나는 과감히 그돌을 선물로 전달했다. 나를 만나 나에게 수도없이 손의 촉감을 전달받은 수석 이라는 이름의 그것이 좀 멀리 경상도 경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 나처럼 그 수석을 사랑해 줄 사람이 생겨 흔쾌히 그에게 자리를 옮기게 했다
그 자리에서 그를 매만지는 사람에게 기를 부여하고 그의 무궁한 발전이 있으면 나는 내 바램에 만족 하는 것이다
작은 돌 수석 하나가 주는 의미로 모두다 선물로 하면 즐거워한다는 것을 보며 나역시 즐겁고 행복했다.
한때 많은사람들이 나를 방문하여 수석을 원했었다 .그들에게 보내진 그 수석들의 안부가 궁금 하지만 아마도 잘 있을 것이다 .얼마전 이곳 농협의 부지점장 을 만나 의견을 나누다 수석이야기 를 했다가 그에게 작은 수석을 하나 선물한적이 있었다. 그에게 아침마다 수석과 마음을 나누고 기를 보내면 곧 승진을 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했다.그가 무척행복해하는 것을 보곤 수석이 행복을 주는 것도 큰 의미이다 라고 생각했다.
오늘 비오는날 강가의 돌밭에서 김치누름돌 을 오석 으로 주어다 주었더니 아내의 행복한 얼굴과 배치되어 내게 수석을 선물받은 그사람이 생각이 났다. 그사람도 매일아침 수석을 매만지며 행복한 사진을 내게 보내주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사람은 검은 수석을 손바닥 으로 쓸며 내가 말 한대로 대화를 나눌 것 이고 그 인연으로 그가 처한 현실에서 조금더 발전하고 조금더 행복해 질 것 이라는 확신을 갖었다. 비가오면 밖에를 나가지 않는다. 창문밖으로 보이는 밖의 사연을 보고 지나간 바람속에 섞어 날아간 시간을 스스로 다시 불러와 나는 그 시간과 대화를 나눈다. 사랑이라는 말은 수석에게 수없이 많이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나 소유한다는 것..그중에 나는 수석을 맨앞에 세워둔다. 내가 선물한 사람들도 그렇한 마음으로 이시간을 소유했으면 좋겠다. 늘 그자리에서 변함 없이 사랑과 믿음을 주는 수석과 나누는 의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