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현대정공에 근무할때 노동운동에 빠져 가정도 등한시 하다 스스로 퇴직을 하고 고향에서 작은 장사를 한지 5년이 되어가는 시점 나의 인생에 큰 변화가 있었던 큰 계기가 있었다
1993년 3월인가 4월 어느날인가...... 국민학교 동창친구가 책한권을 던져주고 한번 읽어보고 이야기하자며
3일후 오께 하면서 갔다
그 친구는 그 당시 신일대학 전임 강사로 후학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책은 다름아닌 새마을 금고 정관이었다
몸뚱아리로 봉사할수 있는 좋은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3일후 그친구가 왔을때 "그래 한번해 보자 넌 인가쪽 맡고 나는 인원 동원할께...................."
그것이 경산 북부동의 새마을 금고 탄생의 서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6월 19일 발기인 창립총회를 하였고 7평 작은 점포에서 여직원 한명 나, 그 친구 그리고 이사장 넸이서 출발을 하였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주춧돌을 놓아야 할지....... 그냥 황소같이 앞만보고 달려 가고 있었다
초기 1세대 금고인들은 모두 피해갈수 없이 그러 했겠지만 창립 첫해 무보수로....
그 다음해 그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용돈 정도의 봉급을 밭으며 열심히 일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생각보다 자리잡혀 가는게 쉽지 않아서 친구 혼자 하라고.. 둘다 굶어 죽겠다하니 ....
힘들어도 함께하자는 친구의 만류에도 사표를 쓰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1년이 지날 즈음 친구가 명아 저녁에 차한잔 하자며 연락이 왔다... 무슨일이지???
커피를 시켜 놓고 그 친구는 이제 "이 새마을금고 니가 맡아서 고향 사람들에 봉사를 해라"
나는 나의 꿈인 대학교 교수로 강의하러 간다고........... 이사회까지 마쳤고 월욜부터 출근해야 한다고...
우여 곡절 끝에 다시 금고로 오게 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금고인의 시작인 셈 상무 직책을 받고 그냥 앉아 있을수 만은 없었다.
영남대 나의 인맥을 앞세워 상가상가 마다 다니며 일일적금 신규 가입유도 동전 교환 이런 업무를 작은 오트바이에 몸을 맡기고 정신없이 뛰어 따녔다
2001년 1월 드디어 자체 복지회관을 완공하여 준공식과 4층 신축 건물에서 업무를 시작하였고
그렇게 달려간 결과물 인지 관내 가장 늦게 출발한 우리 새마을 금고가 15여년이 지난 2008년쯤 외형 자산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나의 최종 목표는 1등이었지만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였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2011년 중엉 검사에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결과가.......
현재 진행형인 대출이 부당 의혹이 있다고 그것으로 어찌할수 없으니 3년마다 검사기준 연체대출금 모두 모아 형사고발을 .... 내가 개인 사적인 부당이 없는데 찍어내기로 몰아가는 그런 검사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정의가 없는 사회같았고 세상은 온통 먹물을 칠한듯...........
새벽 잠없는 나는 새벽 3~4시쯤 일어나면 옥상에 올라 하늘을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는 일이 매일 반복 되었다
큰애는 서울에서 대학 졸업하고 독일에서 인턴을 하고 있고 아들은 고3 예민한 사춘기에 큰 상처를 받았으리라
대학가서 국가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로 겨우 졸업하고 후에 ROTC로 임관하였다
바르게 커 줘서 고맙고 기특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대인 기피증........... 난 잘못도 없다지만 그네들이 보는 시각이..... 자격지심 이랄까...
1년반의 시간이 지나고 다음 명예회복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우선 전무 직함을 받을수 있는 곳을 물색하고 대구 여행사에 프리랜스로 일을 한다 전무 허명.... 금고 생활때와 같이 전무로.....
인맥이 좋아서인지 해외여행 의뢰가 심심찮게 들어와 계약이 이루어지며 나의 모든 생활은
몇년뒤 이사장선거의 선거권자들과 유대관계를 하는데 모든 힘을 쏱있다
와신 상담..............
그러한 세월이 7년여 지나고 2019년1월 이사장 선거가 다가왔다
현직 이사장 그분 그분의 욕심으로 나를 떨어 뜨리기위하여 총력을 펼치고 있었다
지역 여론이 허명 열심히 하였는데 허명 그사람 한번해야 된다는 여론과 현 이자장과 일부 이사들이 지지하는 상대후보가 유리하다는 여론 두가지중 내가 많이 힘들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것 같았다
그러나 난 믿었다 세월을 밑고 진실을 믿으며 표를 가지고 있는 대의원을 믿었다
나의 진심이 통했을까.... 자기일 처럼 나를 지지해 준 몇몇 분들의 덕택과 운이 따라준 한판 승부였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명예회복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새마을금고 태동시킨 그친구에도 고마움과 감사를 전하고싶다
그로부터 2년반 금고 명칭을 새경산으로 변경등기를 하였으며 이사장으로 업무수행을 열심히 하고 있다
직원은 최대한 편하게 업무에 충실할수 있는 분위기를 잡아주며 복지사업 확대 회원들과 유대관계....
새마을금고 이사장은 권위가 아닌 새마을 스러운, 농촌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새마을금고는 하나며 나의 인생 전부라 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 언제까지 될지 모르겠지만 재직하는 동안 나의 혼을 불시르고 싶다
활활 나의 영혼을 태워서라고 새경산 새마을금고의 발전을 이루고 싶다
2021년 5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