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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고향

빈손 허명 2022. 12. 6. 21:01

아버지의 고향
                          빗새
  
아버지가 고향을 떠난다.
떠나기 전 부모님 산소에 들러
절 올리고, 또 올리고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한 시간째 절을 올리는데
아버지는 아마도 오늘이
부모님을 찾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시는 게다.
 
70년 가까운 세월 부부로 살아온 아내는
이제는 아들이 신랑인 줄 알고
싱글벙글한다.
멀리 여행을 간다고
아침부터 고운 옷을 입고
연신 즐거운 표정이다.
 
아내만 온전했으면
다친 내 몸이야 어떻든
고향 땅에서 이생을 마칠 수 있었을 텐데
모질도록 질긴 인생
아흔 나이에 고향을 떠날 줄이야.
 
이제 아버지는 고향을 지우려 한다
90 평생 살아온 뼈마디를 묻으리라 생각했던
부모님 산소 옆에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체념하듯 내려놓고
거죽만 걸어서 고향을 떠나려 한다.

서랍 장에서 꺼내온 사진 한 장
그 속엔 아들을 신랑으로 생각하는
철부지 아내가 고운 모습으로
세월의 더께에 빛이 바랜 흑백 사진 속에서
금빛 닮은 미소로 남아 있다.
 
그 아내와 함께 살기 위해
아버지는 고향을 떠난다.
회혼식을 넘게 살아온 아내는 요양병원,
아버지는 언제 나을지도 모르는 일반 병원으로
이혼 아닌 이혼을 당하기 싫어
도시 사는 아들네로 떠나는 것이다.
 
고향이 멀어질수록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고향 집이 사라지고
저 멀리 선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향에서 멀어지고 있다.
아버지의 육신이
아니, 살아있는 아버지의 영구 행렬이
고향을 떠나고 있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어머니의 하얀 머릿속처럼
고향의 기억이 지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