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나의 일기

통영 장좌도에서 온 편지

빈손 허명 2022. 11. 18. 22:04

장좌도에서  편지가 왔다

내가 중학교 3학년때니 나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 하지 못 하였다.

이런 사실이 있었는지....

74년 2월 21일 저녁 8시. 해군신병 159기와 해경 11기 위탁교육생, 신병훈련소 기간요원 등 630명은
LST(상륙함-landing ship tank) 815함을 타고 진해 해군기지를 출항했다.
두 달 가까운 육상 훈련으로 신병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충천했다.
해군통제부 영내에서만 훈련받다 "드디어 민간 세계'로 나가 본다"는 흥분감과 말로만 듣던 상륙함에
승선해 남해바다를 항해하는 뿌듯한 자부심에 신병들은 지칠 줄 모르고 군가를 불러댔다.
815함이 가덕도를 빠져나와 거제 충무 쪽으로 나아가는 동안 고요한 밤바다에는
해군가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22일 새벽 6시. 815함은 충무 부두 앞 2km, 장자도 동쪽 해상에 닻을 내렸다.
군함이 들어가기에는 내항 수심이 얕아 여기서는 YTL(yard towing large-소형 tug boat,예인선 혹은 운반선으로 불린다)로 갈아타고 부두로 나가는 것이었다.
120t 예인선은 두 차례 300여 명씩을 태우고 충무시내로 들어갔다.
시내가 아직 새벽 단잠에 빠져있는 시간 신병들은 부두에서 충렬사까지 약 2km 구간을 군가를 부르며 행군했다. 사람들은 시내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군가에 단잠을 빼앗겼지만 그게 고된 훈련생활 끝에 외박 참배를 나온 신병들의 군가인 걸 알고는 집에서 뛰어나와 박수를 쳐줬다.
신병들은 신이 났다. 충렬사에서 일부 민간인들이 김밥이나 빵을 건네며 격려하기도 해
“이제야 정말 해군이 된 듯 기분 좋게" 으쓱거리기도 했다.
그날은 여느 2월 말 답지 않게 강추위가 엄습한 날이었다.
오전 10시부터는 충무 앞바다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졌고 으슬으슬 비까지 내려 체감온도는 거의 영하 10도까지 내려가 있었다.
신병들이야 모처럼 훈련소 밖으로 나와 “민간 세상에서 목청껏 군가를 부르고,
시내 한가운데를 행군했으니 신이 났지만" 기간요원들은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추운 날 신병들이 비를 맞으며 돌아다니다 집단으로 감기에 걸릴 위험도 있었다.
그래 충렬사 참배를 대충 끝내고 처음에 내린 부두로 서둘러 되돌아온 게 오전 9시40분이었다.
1시간 동안 인원점호를 끝내고 모함으로 돌아갈 1진 316명이 YTL에 승선 완료한 것이 오전 11시 40분.
나중에 구조된 수병들 진술에 따르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갑판에 쪼그려 앉아 오들오들 떨고
코트 깃을 여미는 사이" 배는 미끄러지듯 내항을 빠져나가 815함 측면 30m 부근까지 달려갔다.
이때가 오전 11시 8분, 그런데 “기온이 워낙 떨어져 급히 모함으로 돌아가고 싶은 조급증 탓이었을까.
큰 배 곁에서 작은 배는 속력을 늦춰야 정석인데 YTL은 그러기는커녕 거의 돌진하다시피 모함 쪽으로
파고드는 게 아닌가. 게다가 모함의 코앞에 이르자 90도로 급커브마저 틀었다.
신병들이 어, 어, 놀랄 틈도 없이 배는 급격히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었다.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속력으로 모함을 향해 달리다 부딪칠 듯 커브를 트니
120t 배만큼의 파도가 만들어져 815함을 쳤다.
이 파도는 다시 고스란히 밀려나와 달려드는 VTL의 옆구리를 밀어제친 것이다.
어쩌면 배가 급커브를 돌자 "갑판에 촘촘히 껴 앉아 있던 신병들이 한쪽으로 몰려 배가 중심을 잃었고
그 사이 모함에 부딪친 파도가 YTL을 때린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815함 옆에서 나뭇잎처럼 물결에 나부끼는 것 같던 YTL은 불과 5분이 안돼
배 밑바닥을 하늘로 보인 채 가라앉기 시작했다.
815 함 조타실에서는 이 장면을 보고 찢어질 듯 고동을 울려댔다.
단말마의 비명처럼, 거의 울부짖는 것 같은 뱃고동이 충무바다에 길게 퍼졌다.
'죽음의 행사' 될 줄이야..

 

이렇게 159명의 우리 젊은이들이 갔어도 누구 하나 여기 말한사람 있는가?

세월호 민간인 사적인 죽음을 정적의 도구로 생 난리친 우리

나라를 위한 희생은 이리도 무심하단 말인가?

수십년 지난 지금 박채호 시인님의 시를 옮겨 본다

제대로 된 우리 국민이라면 이 글을 보며 우리 역사를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장좌도에서 온 편지/박채호

장좌도 앞바다에 잊혀진 젊은 혼령들
아직도 부릅뜬 눈으로 불침번을 서고 있다
1974년 2월 22일 잿빛으로 변한 물길
어찌 꿈엔들 잊으리오 해군 신병 109 명
해경 훈련병 50명, 159인의 영령들이여
그대들은 수학여행을 간 것도
카톡을 하며 노닥거리지도 않았고
조국을 위해 대한민국의 명령 대로
장좌도 앞바다를 불평 한마디 없이
엄숙한 자세로 지키고 있건만
누구 한 사람 그대들을 그리워하거나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어 미안합니다.
대한민국이 부끄럽습니다.
아직도 노란 리본 달고 다니는 사람들
세월호 유족 앞에 밥 굶는 시늉한 사람
검은 바다 피를 토하며 노래한 시인들
장좌도에 한 번이라도 가보기나 했소
159명 젊은 영혼의 부모 형제자매는
통영 앞바다보다 많은 피눈물을 삼키며
조국이라는 큰 글씨 한 자에 견뎠는데
영웅들이여 나라가 그대를 버렸으니
불침번 그만두고 명령에 불복하고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돌아가시오.
그대들을 다시 기억해 주는 나라가 서는 날
그 이름 석 자 소리 높여 불러 드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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