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퍼온 글

자기의 비밀을 자기만 모른다.

빈손 허명 2021. 10. 19. 08:32

자기의 비밀을 자기만 모른다.

태어나서 왔던 곳으로 돌아갈 때까지 인생의 노정은 여행이리라. 그 여행 중에 지키면 좋을 세 가지가 있다.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렇게나 자고, 바라보는 모든 것에 경탄할 것” 내가 그렇게 말하면, 다음과 같이 반문을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깁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먹는 것, 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세요? 여러 사람이 자면 화장실이 제일 문제잖아요?“ 그 말을 들을 때는 할 말을 잃는다.

6,7십 년대 같은 방에서 여러 사람이 이 부대끼며 칼잠을 자던 시절은 이미 오래 된 미래가 되었고,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자 방을 쓰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여럿이 자는 것을 꺼린다.

여러 사람이 잠을 자다가 보면 어떤 사람의 표현대로 ‘저녁 내내 개구리 우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자는 경우’가 많다. 특히 봄밤에 개구리들이 짝짓기 시절에는 더더욱 요란스러워서 한숨도 못 잘 때가 많이 있다. 코를 골고, 이를 갈고, 잠꼬대를 하고,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또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인데, 가장 흔한 것이 코를 고는 것이다.

어떤 때는 교향악단이 저마다의 악기를 마음껏 연주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때는 독주곡처럼 혼자서 밤을 새워 연주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드르렁드르렁 거리다가 어느 순간에는 마치 숨이 넘어갈 것처럼 드세어져 절정에 이르고 긴(?) 정적의 시간의 찾아온다. 그런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 너무 걱정이 되어 일어나 불안한 마음으로 옆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푸’ 하고 내쉬는 소리, 그때의 안도감, 이것이 답사 중의 진풍경이며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종의 재미 난 일상이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여럿이 골았으며 그 중 가장 소리 높여 골았던 사람이 일어나자마자 옆 사람을 삿대질하며 “내가 당신 코고는 사람 대문에 잠을 못 잤잖아?” 하면 그 옆 사람이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부터 코를 많이 곱니다.” 하며 머리를 긁적거리는데, 그때 내가 “나는 당신의 지난 밤일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면 “당신이 그 사람보다 더 많이 골았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빙긋이 웃고 말 때가 더러 있다.

그런 불평이 나올 때마다 하는 말, “코를 안 고는 사람은 푹 잠을 자지만 코를 고는 사람은 저녁 내내 그 코를 고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겠는가.” 하면서 이해하고자 하는데, 하여간 답사를 다니다 보면 별 재미난 것을 많이 겪는(?) 그 재미가 쏠쏠하다.

조선 후기의 문장가로 안의 현감을 지냈던 연암 박지원의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에 여럿이 잠을 자면서 느꼈던 상황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조그만 아이가 뜰에서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귀가 울리자, 맥없이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래서 이웃의 아이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너 이 소리를 들어 봐라. 내 귀에서 생황 부는 소리까지, 마치 병처럼 동그랗게 들린다.”
이웃집 아이가 귀를 맞대고 아무리 들어보려 했지만 끝내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러자 그 아이가 안쓰러워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남이 듣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던 것이다.

내가 한번은 시골 사람과 함께 잠을 자는데, 그는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했다. 불을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솥에서 물이 끓는 것 같기도 으며, 빈 수레가 덜컥 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들이 쉴 때에는 톱을 켜는 소리를 내다가 내실 때에는 돼지소리를 냈다.

옆 사람이 잡아 일으켜 세우자, 그가 불끈 성을 내면서 말했다.

“나는 코를 곤 적이 없소,”

아아, 자기 혼자만 아는 것은 언제나 남이 몰라주어서 걱정이고, 자기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남이 먼저 일깨워주는 것도 싫어한다.

어찌 코나 귀에만 이런 병이 있으랴, 귀가 울리는 것은 병이 아닌데도 남이 몰라준다고 걱정했으니, 하물며 병이 아닌 것이야 말해 무엇 하랴. 하물며 병을 일깨워 주었다면 어찌했으랴.

그러므로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이 기왓장이나 조약돌같이 내버리지 않는다면, 화가의 붓끝에서 극악무도한 도둑의 텁수룩한 대가리가 살아나올 것이다.

귀가 울리는 것을 듣지 않고 코고는 것을 일깨워 준다면. 작가의 뜻에 거의 가까운 것이다.“
자기를 잘 알 것 같지만 가장 잘 모르는 것이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이고, 자기의 결점을 자신은 모른다는 것이다.

피곤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건 작건 간에 코를 곤다.

자기를 모르는 것이 어디 잠을 자면서 일어나는 일들 뿐일까? 밝은 대낮에도 잘못을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고, 그래서 부끄러움을 모르고 행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외로운 나그네는 그림자가 동행한다.” 라는 속담과 함께, “돈 없는 나그네, 주막 지나듯 한다.” 라는 속담도 있다. 길 떠난 나그네가 지녀야 할 가장 큰 덕목이자 행운은 ‘남의 코고는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을 수 있다는 것, 하루 종일 수많은 거리를 걷고, 배부르게 먹고, 등 따시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일도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다리와 먼 길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그것만을 행복이라고 다행이라고 여겨야 한다.

그러면서, 김수영 시인의 시 구절같이 “가자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라 생각하며 걷다가 보면 밤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이 가인嘉人이 가을 창가에서 부르는 세레나데처럼 들리지 않을까?

”가을이구나, 빌어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 같은, 나는 이를 깨물며, 정신을 깨물며, 감각을 깨물며, 너에게 살의를 느낀다. 가을 원수 같은,“
정현종 시인의 <가을 원수 같은>이라는 시를 읊조리며 단풍이 물드는 고창의 문수산 단풍나무 숲에서 하루룰 보내면 오는 겨울이 쓸쓸하지 않을 듯 싶다.

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길위의 인문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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