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 금호에서 대창으로 오는 길목에 만취당 고택 안내표지판을 보고 들어 갔다
가끔 지나 다니는 길 인데 고택을 보지 못했다
주위에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있어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는데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다
만취당은 건물은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인 지산(芝山)조호익(曺好益) 선생의 7세손이며 정조5년(1781년)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曺學臣, 1732~1800) 선생이 살던 집으로 만취당은 사랑채에 붙인 이름이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은 주택에도 영향을 미쳐 한 집안 내에서도 남녀의 처소를 안채와 사랑채로 분리하였으며 조상에 대한 제례를 중시하여 사당을 갖추도록 하였다. 이 집은 안채와 중사랑채 및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사당 뒤쪽에는 신주를 모셔다 제사드리는 별묘(別廟) 및 보본재(報本齋) 등이 배치되어 사대부 저택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집 뒤의 마을을 감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은 선생이 손수 심어 이루어낸 것으로 전한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33호로 지정된 금산당 고택은 건립 당초에는
전체적으로 ㅁ자형 배치로 안채 정면 좌측에 3칸 집이었고 안채 우측으로 협문을 통해 만취당으로 연결되었다고 하나
지금은 막혀있는 상태이다
금산당고택은 영천시 종동길 23에 있는 고택으로 조병문이 둘째 아들인 조명환에게 살림집으로 지어주었다고 합다.
현재 사랑채 종도리 장혀에 적혀있는 상량문에 의하면 대한 4년, 즉 1900년대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당의 사랑채와 안채는 당시의 목조 기법과 격식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고 하며
사랑채의 중문간채는 하인방이 드나 드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월방으로 처리하고
대청의 기둥을 자연스럽게 휜 부재를 쓴 것은 건축주의 미적 감각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한다
금산당은 우측에 있는 만취당과 동선이 긴밀하게 이어져 있고 평면 구성 또한
밀접한 관련있어서 만취당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금산당과 만취당 주위를 두르고 있는 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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