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대비사는 경산에서 40여분 거리에 있는 1500여년된 고찰이다
경산과 가깝다보니 가끔 들렸고 바로 위 억산이라는 영남 알프스의 아름다운 산이 있어 친금감이 있다
어제 아들과 며느리와 점심 저녁으로는 미나리로 저녁까지 먹으며 과식을 하였는지 아침에 소화가 되지 않아 월애 계획한 영동 반야사는 가지 못했다
요즘 소화 기능이 많이 떨어진 느낌을 가끔 느낀다
10시 넘어 아점으로 아내와 간단히 챙겨 먹고 대비사나 다녀 오자며 길을 나섰다
대비사는 청도 금천면 박곡리 운문산(1,188m) 북쪽 기슭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산 능선을 사이에 두고 동쪽 직선거리 2km 지점에는 운문사가 있다. 신라 566년(진흥왕 27년) 신승(神僧)이 창건하였다. 신승은 능력이 뛰어난 승려를 뜻하는 말로 창건 당시에는 소작갑사(小鵲岬寺)라 하였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신라 557년(진흥왕 18년) 한 신승(神僧)이 금수동에 들어와 작은 암자를 짓고 3년 동안 수도하여 큰 깨달음을 얻은 후 절을 짓기 시작하여 동쪽에 가슬갑사(폐사), 남쪽에 천문갑사(폐사), 서쪽에 대비갑사(현 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폐사)를 짓고 중앙에 대작갑사(현 운문사)를 창건하였다 한다. 신라 600년(진평왕 22년)에는 원광국사가 중창하고 절 이름을 대비갑사라 불렀다. 대비사라는 절 이름은 불교의 대자대비에서 유래하였으며, 언제 대비갑사가 대비사로 바뀌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창건 당시 절은 박곡리 부락에 있었으나, 라말려초 후삼국이 다툴 때 다른 4개 사찰과 함께 불에 탄 후 고려 인종(1123년∼1149년) 때 원응국사 학일이 중창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조선 중기에 들어와 대웅전이 조성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대웅전을 중수하였다. 한국전쟁 때 절이 불에 타자 금천면에서 성금을 모아 응교(應敎)가 재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는 대웅전, 향로전, 요사채, 범종루, 삼성각, 명부전 등이 있다. 주요 문화재는 대비사 대웅전(보물 제834호), 대비사 석조석가불죄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3호) 등이 있으며, 특히 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춘 건물로 견실하고 짜임새 있게 세워져 있는 아름다운 문화재로, 대웅전 불단 내부에서 발견된 묵서에 의하면 조선 185년(숙종 11년)에 중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절 입구에는 아름다운 대비저수지가 있어 고즈넉한 대비사와 함께 주변의 아름다운 호수를 둘러볼 수 있다.
법당내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가까이서 보는것은 처음이다
대비사 가는 길목 박곡리 동네를 지나가는데..
동네에 탑과 석불이 있다 문은 닫혀 있지만 열고 들어가 관람 할 수는 있다
박곡리석 조석가여래좌상은 대비사 아래 어쩌면 원래 대비사가 있던 곳인지도 모르지만
박곡리 길가에 탑과 석불이 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불상은 그래도 통일신라시대 조성된 것으로 보물 제 203호다.
보호각 문을 열고 석불을 보니 항마촉지인의 석가여래다.
불상 명칭은 박곡리 석조석가여래좌상이 되겠다.
1928년 화재로 인해 지금처럼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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