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지**/강원도

도피안사

빈손 허명 2022. 7. 19. 22:45

지금의 철원은 잘린 한반도처럼 남과 북으로 몸이 찢겼다. 동서남북 한 가운데가 아니라 남과 북이 서로를 향해 겨눈 총부리가 가장 맞닿은 긴장의 땅이다. 철원의 운명은 그래서 한반도 평화와 직결한다

도피안사

절의 이름은 철조불상이 피안(열반의 세계)에 이르렀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1898년 불탔으나 당시의 주지 월운이 신도 강대용의 도움을 받아 중건했고, 1914년에는 주지 김의권에 의해서 신축·개수되었으나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철조불상과 대좌 및 석탑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뒤 1959년 이명재 소장이 15사단 장병과 함께 재건했으며, 현재는 군에서 파견된 군승과 주지 김상기가 관리하고 있지만 휴전선 북쪽 민통선 북방에 위치하고 있어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현존하는 유물로는 법당과 요사채,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철원 도피안사 3층석탑(보물 제223호) 등이 있다

도의국사의 제자 염거화상을 이은 체징이 전남 장흥 보림사에서 선문(禪門)을 열고 태안사에는 혜철국사가 동리산문을 열었다. 도피안사를 창건한 도선국사가 동리산문 혜철국사 제자니 도피안사에 철불을 조성한 이들은 새 시대를 열어갈 새로운 세대였을 것이다. 
도피안사를 창건 하고 40년 뒤 궁예가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에서 태봉으로 바꾸고 철원을 수도로 삼았다.

그는 도선국사가 도피안사를 창건하던 당시 왕인 경문왕 아들로 알려진 인물이다.

후궁에서 난 4남 궁예가 자신이 미륵의 화신으로 칭하며 아버지의 나라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나라를 세우는 거사나 절을 창건하며 불상을 조성하는 불사나 외형은 다르지만 지향하는 목적은 같다. 바로 평안(平安)이다. 개인이 평안하면 사회가 평안하고 온 나라가 태평해진다. 하지만 그 방법은 다르다. 나라를 세우는 군인이나 정치가는 무력과 법으로 이루려 하고 종교는 각 개인의 각성과 배려, 그리고 기도를 통해 성취하려 한다. 도피안사를 창건하고 철불을 봉안했던 철원의 향도들도 그러했다. 이들은 철불에 이런 발원을 담았다. 
“석가모니가 열반한 후 세상이 어둡게 되고 삼천광(三千光)이 비치지 않는 것을 슬퍼하여 865년 1월에 향도 1500여 명이 발원하여 이 불상을 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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