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수양**/나의 일기

지금부터 다시 회초리를 들자

빈손 허명 2021. 9. 5. 09:09

나는 1남 1녀를 두었다
위로 딸 아래 아들이다

애들이 아주 어릴때... 
가진 게 없어도 내 자식에게 무얼 해줄까 늘 고민이었고 애들 인성 형성에 대하여 가장 큰 걱정이었다
그래 세상을 보여주자 넓은 세상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시작한 것이 여행이다 큰애 2살 때부터 시작한 걸로 기억되는 여행... 그때 기아차 프라이드를 사서 작은 트렁크에 텐트, 코펠, 침낭, 등등... 가득 실고 다니며 좋은 곳이면 하루 잠을 자고.
아마 지금 나의 방랑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나 보다

둘째 중학교 2학년때인가 역사 시간인지 한국지리 시간인지...  선생님이 학생들에 해미읍성 가본사람? 

왜목마을 가본 사람? 판문점 가본 사람? 독립기념관? 통일전망대? 등등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대하여 학생들에 물은적이 있는데 아들 혼자 모두 가 보았다고 손을 들었다 한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가지 않은곳이 없을 정도였다

친구들의 부러움 대상 이었다니 아들 어께가 좀 으쓱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여행은 역사적인 지리적인 문화적인 교육 위주의 여행이었다

요즘 주로 등장하는 뉴스가
노인네 뭇지마 폭행하는 10대들...
학교 선생을 폭행하는 초, 중등학생들...
이것도 모자라 형제 살인 부모 살인 등 존속폭행과 살인을 보면 인성이 무너지고...
자식을 하나 혹 둘만 낳다 보니 내 자식이 최고이며 제일 귀한 내 자식으로 키운 죄 바로 우리 나의 잘못인 것을...


나는 애들 둘 다 초등부터 중학 졸업 때까지 학교 태워준 것이 손에 꼽을 만하다
애들 엄마도 입학 때 며칠 학교 손잡고 데려다주고 끝이다  어릴 때부터 자립심을 키워 주려한 것이다
고등학교 땐 기숙사 있는 곳으로 가서... 그때부터 부모와 이별이었다
그리고 학원과 과외도 모르고 키웠다  잠깐 부족한 것 채우는 것 외에는...
나의 경제적인 경향도 있었지만 애들 자기 의사를 존중해서 애들이 하고 싶은 것들만 시켰다

 둘 모두 태권도는 1급까지 하였고....

공부에 관한 것은 학습지가 전부였다.  실컷 뛰어놀아라고...
큰 애는 고1 때 수학이 너무 어렵다며 기숙사 나오는 주말에 학원 보내 달라해서 경북대 수학과 학생 과외를 붙었다
2개월 하더니 이젠 되었다고.. 학교 수업과 혼자서 독서실에서 책과 시름하여.. 수능을 보았다
학교에서는 고대 경영학과 가능하다는 걸 성균관 지원해서 떨어지고 건국대 경영학과 들어갔었고

아들은 ROTC에 장교 전역을 하고 은행에 취업하여 근무하고 있다.

나는 공부보다 먼저 사회 적응력을 키워 주려 신경을 썼다
애들에게 어릴 때부터 남을 배려하라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라
욕심부리지 말고
상대 말을 들어주어라
늘 강조하고 또 강조하였다 그것이 지금 나타나는 듯하다...

훈육이 사라진 오늘날 사회적 병폐가 만연하다
군 기강이 무너졌고
교권이 무너졌고
가정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회초리가 필요하다

잘못되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걸 어릴 때부터 인식을 시켜야 커서도 죄를 짓지 않을 텐데...

가정과 학교에서 나는 사랑의 매를 적절하게 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도무지 죄의식이 없다

어른 공경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약 20여 년 전 여주 대학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건축과 교수이신 구흥서 교수님 강의에서 야간 반 학생은 좀 더 공부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강의 가 끝날 때는 무조건 과제를 내주었고 잘 해온 사람은 상으로 책을 한 권씩 주었으며

"과제를 써오지 않으면 회초리로 매를 맞을 거다 지금 맞기 싫으면 말해라...

물론 미리 약속을 하는 것이고  싫다면 회초리는 들지 않겠다"라고 하고

학생들은 "좋습니다.."라고 다짐을 했었다 한다

반 학생 40명 중에 15명 정도가 숙제를 해 오지 않은 제자가 있어 모두 앞으로 불러 한 줄로 세워

그리고 손바닥을 펴게 하고는 회초리로 때렸는데....

"감사합니다.."

맞으면서 그리 말하는 학생이 있었다 하니 그때만 해도 교권이 서고 사회의 기강이 서있어 보람된 교정 생활이라 생각이 든다. 구흥서 교수님 제자들에 나중에 주례 구하기 힘든 학생은 찾아오면 주례를 서주겠다고 하였었는데...

그 학생이 주례 부탁하러 10년이 지난 후에 찾아와서 멋지게 주례를 서 주셨다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제 관계인가....  지금의 교정을 보면...  상상하기 어려운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이때만 해도 학생다운 순수를 볼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 자기가 최고라는 우월주의에 도취되어 있다

슬프다 이렇게 만든 이나라 지도자들.. 그리고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를 사랑으로 봉사로 희생으로 살아가는 사회로 되돌릴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자

지금부터 라도 다시 회초리를 들자

둘째 놈이 너무 고집이 세고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첫돌 지나고 두 돌 되기 전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막무가내 고집을 부린다

아무리 달래고 얼러고......  특단의 뭔가 필요한....
그래서 안고 나가서 집 옆 폐가에 던져버리고 집에 와서 문을 닫아버렸다
그것도 겨울에..
맨발에 아마 춥고 무섭고.. 불안하고...
나의 마음은 찢어지듯 아팠지만 그 고집을 지금 꺾어 놓지 않으면 아들 앞날 살아감에 자신이 큰 벽에 부딪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현관 앞에서 소리 내어 울고 있다
30분쯤 후 문을 열고 잘잘못을 이야기하니 처음으로 잘못했다 다시는 고집부리지 않겠다 한다
나도 속으로 울었다
그 후 아들의 고집은 꺾이며 친구처럼 장난을 치다가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는
약간 강한 어조로 "재야" 한마디 하면 바로 꼬리를 내린다
닭띠 고집이라서 그런지... 생각하다
어느 누가 그러셨다 "닭띠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나 혼자 웃는다....

우리 가정에서 학교에서 회초리를 없애니 지금의 이런 존속 폭행은 물론 살인까지 이 모든 게 우리 잘못인 자업자득이라

생각한다

죽어가는 팽이도 회초리 몇 대면 생생 살아난다

내 자신에게도 때론 회초리를 들어야 된다 그렇게 회초리를 맞으면 살아나기 때문이다

 

회초리를 드시고

"종아리를 걷어라"

맞는 아이보다

먼저 우시던

어머니

 

황금찬 시인의 "회초리" 란 "시"다

회초리는 우리나라 훈육에서 사랑의 매라 한다

나의 아내가 아이들에 간혹 손바닥을 때리는 걸 보았다

그렇게 사랑의 매를 맞고 자란 우리 아이를 보면 매를 든 부모나 맞는 아이들이나 그렇게 정이 들고 인성이 쌓이고

공과를 알아 가고 잘못하면 댓가를 치른다는 걸 배워간다고 생각한다

맞아 우는 아이

그 먼저 우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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