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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리와 보리밥에 대한 추억

빈손 허명 2006. 7. 31. 12:03

 

 

 

 

 

 

 

 

 

길을 가다보면 보리밥 전문점이 부쩍 눈에 많이 띈다.

 

참살이 음식하면 보리밥과 채식이 먼저 떠오른다. 배고픔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보리밥이 잘살아보세~ 바람을 타고 인기몰이에 한창이다.

 

요즘은 보리밥집도 대형화되는 추세다. 시장 한 켠 에 자리 잡고 있던 허름한 보리밥집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식당의 외관을 비롯해서 분위기도 그럴 싸 해 보인다. 하지만 난 이런 집에 들어가서 먹는 걸 탐탁치  않게 여긴다. 아니, 대형화 된 보리밥집은 일단 내 몸에서 거부반응부터 일어난다. 보리밥의 내용물도 문제다.

 

보리밥은 보리밥다워야 하는데 쌀의 함량이 많을 뿐 아니라 심리적인 가격대보다 비싼 것도 꺼려지는 이유다. 장사는 돈 벌기 위해서 한다지만 음식점에서 인간미보다 앞서 사업냄새부터 나면 도무지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또 배고픈 시절에 즐겨먹었던 음식이 보리밥이어서 그런지 지금도 보리밥 하면 일단 맛보다 정서적인 측면을 앞세운다. (뭐 다른 음식도 그렇지만...^^) 

 

그래서 보리밥집은 허름해야 하고 작아야 하고 돈 냄새가 나지 않아야 안심하고 맛있게 먹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나의 고정관념을 망치보다 더 쌔게 깨주는 집이 있다. 부천 중동 GS백화점 뒤편에 있는 ‘예전보릿골’은 외형적으로 보아서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거의 없는 집이다.

 

 

(맛있는 인생= 맛객) 넓고 깔끔한 실내가 보리밥집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불친절하게 1층도 아닌 2층에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치... 무슨 배짱으로 2층이람?) 더군다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 중에 하나인 노래방 옆이다. (한 가지가 미우면 괜히 다 미워진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건 뭐...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넓은 실내와 세련된 인테리어도 불만이다.

 

보리밥집으로는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메뉴판 좀 보라지. 고대벽화 무늬로 치장되어 고급스럽고 화려하고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첫 장을 넘기면 나오는 문구‘ 여성이 아름다워 보이는가’ (여성...?? 사람이 아름다워 보이는가도 아니고 말야... 이건 역 성차별 아냐)

 

‘까다롭게 따져보고 먹는 웰빙라이프’ 란 글귀도 보인다. 이것으로도 손님들은 안심시키기에 부족했는지 ‘예전보릿골은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라고 업소자랑을 늘어놓았다. (흠....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내 그 말을 믿을 줄 알지)

 

보리밥과 동동주를 주문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인테리어에 잔뜩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그렇다고 천박해 보이지는 않는다.(인정할건 인정할줄 아는 멋진 맛객 흠흠!! ) 혼자나 둘이 와서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런 널다란 테이블은 단순이 실내공간이 넓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맛있는 인생= 맛객) 수저통의 수저가 잘 정리되어 있다

 

여러모로 손님을 배려한 흔적이 분명해 보인다. 테이블 끝에 수저통과 티슈 고추장그릇은 살림 잘하는 아낙네의 손길이 닿은 장독대처럼 반듯하고 정갈해 보인다. 옹기로 만든 고추장 그릇 뚜껑을 열어보니 다른 집과 차이가 보인다. 시골 장독에 있는 고추장처럼 발효가 되어가고 있다.

 

 

(맛있는 인생= 맛객) 한눈에 봐도 살아있는 느낌이 나는 고추장이 잘 발효되고 있다

 

이는 분명 여러 가지 양념으로 만든 다른 집 고추장의 맛도 아니고 사 먹는 고추장처럼 되고 끈~적한 고추장도 아니다. 부드러우면서 고추장이 숨 쉴 수 있을 정도로 공기구멍이 가득하고 그래선지 푸석푸석한 느낌도 든다.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내 마음은 벌써 이 집의 철두철미함에 농락(?) 당해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호박죽과 숭늉이 먼저 나온다. 반짝 반짝 윤기가 흐르고 찰기가 고스란히 혀에 전해지는 호박죽을 가볍게 비우고 나니 드디어 보리밥 한상이 차려졌다. 위에서 이집을 잔뜩 흉을 봤으니 지금부터는 대 놓고 자랑 좀 해야 쓰겄다. ( 맛집 소개는 원래 업소를 자랑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 그러나 업소자랑만 늘어놓다보면 반대파들에게는 광고라고 오해받기 십상이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자랑해서 널리 퍼져나가게 할테다)

 

 

 

 

 

 

 

 

이 집의 메뉴판에 적혀져 있는 ‘웰빙라이프’ 란 말에 걸맞게 모든 식기는 사기로 되어있다. 보리밥은 옹기그릇에 담겨져 나온다. 찰보리에 늘보리가 약간 들어간 듯 보인다. 군데군데 강낭콩이 박혀있다. 찹쌀도 조금 들어갔다.

 

이는 찰기가 부족한 보리밥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함인 듯 하다. 찰보리밥은 늘보리에 비해 차지고 퍼짐성이 좋아서 부드럽고 소화도 빠른 장점이 있다. 보리밥에 넣어서 비벼먹는 나물은 기본적으로 콩나물 숙주 고사리 무나물 등 숙채 8가지 류가 나오고 상추와 치커리가 따로 나온다.

 

 

 

 

 

 

나물은 부족하지 않게 나온다. 식성에 맞게 큰 그릇에서 덜어먹게 나오는 열무김치나 무 생채무침을 넣고 비벼도 맛있다. (맛객이 보리밥 먹는 법 살짝 공개할까요? 처음엔 고추장을 적게 넣어서 되도록 나물을 많이 먹는답니다. 그러다가 밥이 나물보다 많아지면 반찬 한두 가지를 더 넣고 고추장도 더 넣어서 비벼 진한 맛이 나게 먹는답니다. 그럼 마지막까지 물리지 않고 맛나게 먹게 됩니다)

 

 

 

 

(맛있는 인생= 맛객) 청국장과 된장이 혼합된 찌개, 진한 맛이 난다

 

찌개로 나오는 콩비지와 된장찌개 맛도 만만하지가 않다.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가 아니라 콩을 갈아서 만들었다. ‘콩탕’ ‘콩찌개’ 라고 불러주는 게 낫겠다. 된장찌개는 청국장과 혼합된 찌개다. 그렇기에 된장으로만 끓일 때보다 진맛이고 구수하다. 음식을 먹으면서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믿음이 절로 든다.

 

 

 

(맛있는 인생= 맛객)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순한 맛이지만 재료의 맛은 더욱 살아난다

 

동치미는 달지 않고 시큼한 맛도 아니다. 맛있다 가 아니고 음.. 좋다 이다. 먹으면 먹을수록 입안은 샤워를 한 듯 상쾌하고 깔끔한 맛이 전해진다. 이렇듯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대하면 첫맛은 별로라고 느껴지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당기게 된다.

 

개운하고 깔끔하기 때문이다. 화학조미료가 들어가도 건강에 별 해롭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꼭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 멀리 하는 건 아니다. 자연이 주는 맛을 제대로 느끼고자 할 때 화학조미료가 방해하기 때문에 기피한다. 사기꾼의 달콤한 감언이설처럼 화학조미료는 혀에게 사기를 걸어서 가짜 맛에 속아 넘어가게 만든다. 그래서 너를(화학조미료)를 싫어한다. 나는 만들어진 맛이 주는 달콤함보다 본디 재료가 주는 순수한 맛을 더 원한다.

 

 

 

여름은 보리밥의 계절이다. 보리밥이 맛있을 뿐 아니라 보리의 찬 성질이 더위를 이기게 해 주니 이만한 계절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환경을 생각하고 에너지를 아끼는 차원에서라도 잠시 에어컨을 끄고 보리밥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쓴맛 나는 여름 푸성귀에 달착지근한 고추장 한 숟갈 떠서 비벼먹어도 좋겠다. 식은 보리밥 한 그릇에 냉수로 물 말아서 풋고추 된장 찍어 한 잎 깨물면 없던 식욕도 떼거리로 몰려 올 것만 같다.

 

보리밥 / 5,000원

예전보릿골 032)328-6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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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와 스트레스

 

언젠가 TV에서 고추의 매운 성분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방영한 걸 본적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경제가 어려워질 때 매운맛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또 주부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밥을 비벼서 먹는데 이때 들어가는 고추장의 매운맛이 스트레스를 낮춰주기 때문이라죠. 이왕이면 쌀밥보다 보리밥으로 비벼 드세요. 보리에는 여러 가지 비타민류와 무기성분. 필수 아미노산 등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향상시켜주는 물질이 풍부하게 들어있다고 합니다.
 

 

 

 

 

 

맛객

 

 


 

출처 : 맛있는 인생
글쓴이 : 맛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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