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이 늘 말했습니다. “내가 박정희에게 속았다”
이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1972년7월4일,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공식 천명하면서 통일의 원칙에 합의했다.
*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당시 북한은 대량의 무장간첩을 내려 보내 사회가 참으로 혼란했던 시기였습니다. 닉슨 닥트린이 선포되어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 되었습니다. 이 때 박정희는 주도적으로 북한에 밀사를 보내 위와 같은 내용의 화해를 함으로서 시간을 벌었습니다.
시간을 벌어놓은 박정희는 오직 경제발전에 피치를 올렸고, 김일성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후 몇년 사이에 남한 경제가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사게 되자 김일성은 자신의 무력증강 노선과 박정희의 경제발전 노선을 비교하면서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내가 박정희에 속았다!"
이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1972년7월4일,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공식 천명하면서 통일의 원칙에 합의했다.
*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
당시 북한은 대량의 무장간첩을 내려 보내 사회가 참으로 혼란했던 시기였습니다. 닉슨 닥트린이 선포되어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 되었습니다. 이 때 박정희는 주도적으로 북한에 밀사를 보내 위와 같은 내용의 화해를 함으로서 시간을 벌었습니다.
시간을 벌어놓은 박정희는 오직 경제발전에 피치를 올렸고, 김일성은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후 몇년 사이에 남한 경제가 세계인들의 부러움을 사게 되자 김일성은 자신의 무력증강 노선과 박정희의 경제발전 노선을 비교하면서 후회를 했다고 합니다.
"내가 박정희에 속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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