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태어나는 일이 이렇게 신비할 줄이야 | |||||||||||||||||||||||||||||
[오마이뉴스 윤태 기자] 출산예정일 : 7월 15일 출산일 : 7월 15일 새벽 06시 03분 병원 : ○○ 산부인과 분만형태 : 자연분만 몸무게 : 2.9kg, 키 50cm, 사내아이 총비용 : 19만5천원(2박3일 입원비, 간염 예방, 분유값, 초음파 진료비 등 포함) 출산의 서막은 가볍게 올랐다
저녁 아홉시,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곧 힘을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10시가 다 돼 아내는 샤워를 하고 난 후 배 모습을 디카로 찍어달라고 했다. 오늘 이후로는 더 이상 부른 배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불룩한 모습을 몇 장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고 한 시간 가량 이것저것 챙긴 아내는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그때부터 30∼40분 간격의 약한 진통이 20분 간격으로 짧아지면서 강도도 강해지기 시작했다. 새벽 1시에는 10분 간격으로 더욱 더 강한 진통이 몰려왔다. 아내는 10분에 한 번씩 "아이고 아파라"를 외치며 뒹굴었다. 새벽 두 시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정확히 5분에 한 번씩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몸을 부르르 떨고 이에서 빠드득 소리를 낼 정도로 심한 진통을 호소했다. 드디어 병원에 가야할 시점이었다. 골목 저 아래에서 차를 갖고 올라오는데 차가 이상했다. 정지해 있으면 시동이 꺼질 듯 심하게 떨었다. 아파 울부짖는 아내를 장모님과 부축해 차에 태우고 큰길가까지 나와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는데 역시 시동이 꺼질 듯 불안했다. 하필 이 위급한 상황에 차가 말썽일까? 어떻게든 병원까지는 가야 했다. 고장 나 주저앉을 때 앉더라도. 힘주기 과정에서는 똥도 나온다. 창피할 건 없다 방법은 멈추지 않고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출산에 임박한 임산부를 급히 병원으로 운반하는 긴급자동차로 인정받기 위해 비상등을 켜고 속도와 신호에 관계없이 달렸다. 새벽 2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하니 조산사 한 분이 계셨다. 우선 입원실에 눕혔다. 조산사는 나더러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내진을 할 모양이었다.
조산사가 또 다시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4센티미터 열렸다. 3시 50분. 아내의 고통은 더 심해지고 이젠 밖에 나가 있고 말고 할 상황이 안됐다. 선혈이 줄줄 흘러나와 시트를 물들였다. 아내의 비명은 더욱 세지고 길어졌다. 비교적 큰 규모의 병원에 아내와 장모님, 조산사,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출산에 참여하고 있었다. 4시 45분. 자궁문이 5센티미터 열렸다. 조산사는 출산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혹시 배에 힘이 들어가면 힘을 주라고 했다. 진통이 자궁문이 열리는 과정이라면, 힘주기는 아기를 밖으로 밀어내는 본격적인 출산의 과정이다. 5시 정각. 조산사의 지시에 따라 아내가 배에 힘을 줬다. 울부짖는 아내의 다리와 옷이 피범벅이 됐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하면서 설마 아기 낳다 그럴까? 하며 위안을 하기도 했다. 이 고통의 순간은 언제 끝날까? 5시 5분. 조산사는 한 번만 힘줘보고 가족분만실로 옮기자고 했다. 지금까지는 입원실이었다. 힘 주며 악에 받친 듯이 울부짖던 아내가 갑자기 "똥 나왔어. 어떡해?"를 외쳤다. 그 와중에도 창피했던 모양이었다. 조산사는 괜찮다고 했다.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똥 나오는 게 정상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내는 조산사와 나의 부축을 받고 질질 끌려가다시피 가족분만실로 옮겨졌다.
5시 25분. 힘만 잘 주면 아기가 일찍 나올 수 있다고 조산사가 힘을 복돋웠다. 아내는 진통이 한창일 때 여지없이 "언제 나와. 언제 나와?"를 외치며 고통을 감내했다. 내 '머리끄덩이'를 잡지도 않았고, "나쁜 놈아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어?"라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단지 아기가 빨리 나오기만 학수고대하며 힘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5시 30분. 아내의 코에 산소마스크가 씌워졌다. 나는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아내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았다. 그러나 아내는 그런 나를 자꾸만 밀쳐냈다(나중에 물어보니, 수건을 들이대니 힘주기에 집중할 수 없어서 그랬단다). 5시 40분. 수술용 장갑을 끼고 자궁문 개봉을 돕던 조산사가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피범벅이 돼 있었다. 산모가 힘만 준다고 아기가 순순히 나오는 건 아니었다. 조산사는 조금만 더 힘 주면 아가 머리가 보일 것 같다고 했다. 5시 45분. 문 원장님이 도착했다. 지난 10개월 동안 꽤 정이 든 의사 선생님이었다. 자지러지는 고통 속에서도 아내는 원장님께 꾸벅 인사를 했다. 조산사 자리에 문 원장님이 앉았고 조산사는 무엇인가 도구를 챙겼다. 원장님은 아내의 상태를 보더니, "아주 잘 진행되고 있어요"라며 여유까지 보이셨다. 나는 숨넘어갈 지경인데 여유 있는 웃음이라? 5시 46분. 아기 머리가 조금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저 아내 머리맡에서 발만 둥둥 구르며 장모님께 "장모님, 보여요? 보여요?"라고 물었다. 문 원장님은 장모님께 "뭐 볼 게 있다고 그래요?"라며 웃으셨다. 5시 47분. 아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아가의 심장 박동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엄마가 숨을 제대로 못 쉬니 당연히 아가한테 영향이 미치는 것이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으니 아가의 심장 박동이 올라갔다. 아내는 연신 "언제 나와? 언제 나와?"를 외쳤다. 5시 59분. 회음부 절개를 위해 하지를 마취했다. 절개 순간 원장님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밥 먹듯 하는 일이지만 역시 남의 살을 찢어낸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듯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가위로 조금 절개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원장님의 표정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6시 2분. 흡인기가 동원됐다. 아내의 힘이 빠질 대로 빠져 있었다. 흡인기를 반쯤 보이는 아가의 머리에 대고 힘을 가했다. 아내의 고통소리는 하늘을 찔렀고, 원장님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얼른 이 고통의 순간이 지나야 할 텐데…. 나는 아내의 머리맡에서 원장님의 표정이 바뀌기만을 기다렸다. 6시 3분. 일그러졌던 원장님의 표정이 바뀜과 동시에 아가 새롬이가 몸을 드러냈다. 온 몸에 피 범벅을 하고서 꿈틀거리는 저 아기. 이 순간부터 순서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우선 내가 탯줄을 자르고 난 뒤 아내에게 잠깐 보여준 후 코, 입, 폐에 이물질을 빼낸 것 같다. 아기가 나왔다고 출산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다. 새롬이의 뒤통수가 마치 오이처럼 길어져 있었다. 아기의 머리가 말랑말랑해서 태어날 때 산도를 빠져나오며 찌그러지고 모양이 변한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뒷머리가 늘어나 있었다. 흡인기로 꺼내면서 많이 늘어난 듯했다(이틀 지나니까 길쭉했던 뒷머리가 완벽히 정상적인 모양으로 돌아왔다). 아기가 나왔다고 출산이 끝난 건 아니었다. 10여분 후 태반이 나왔다. 그냥 나온 게 아니라 끄집어냈다. 순간의 그 고통 또한 출산 못지않았다. 아내의 표정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태반은 많은 혈관이 뭉쳐져 있는 모양이었다. 그 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사람의 뱃속에서 나왔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뭐랄까? 신비했다. 여하튼 아내는 병원에 간 지 4시간만에 순산했다. 어떤 사람은 스무 시간 넘게 진통하다가 도저히 안돼 수술을 했다고도 하는데, 그야말로 아내는 '스피드 출산'을 한 것이다. 물론 아내에게 있어 네 시간은 생애 최대의 고통을 맞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산고의 정도를 글로 가늠에 여기에 펼치고 있지만…. 지금 시각 7월 18일 새벽 1시. 출산 후유증으로 온몸이 통통 붓고 시큰거리는 아내는 아가 새롬이와 씨름을 하고 있다. 입을 빼꼼빼꼼, 쌜쭉거리며 본능적으로 밥을 찾고 있는 새롬이를 보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든다. 글쎄, 뭐랄까? '또 다른 나'가 있으니 든든하고 뿌듯하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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