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지**/부산&경상남도

오영수 문학관

빈손 허명 2023. 1. 15. 19:01

기장 안적사에 부처님을 뵙고 기장 일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언양 오영수 문학관 관람을 한다

오영수작가는 소설가. 호는 월주(月洲). 경상남도 울주 출생. 1949년 단편 소설 ‘남이와 엿장수’(‘고무신’으로 제목을 바꿈)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입선, 이 작품을 “신천지(新天地)”에 발표하고, 이듬해 단편 ‘머루’가 다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화산댁이’(1952), ‘윤이와 소’(1952), ‘갯마을’(1953), ‘박학도(朴學道)’(1955), ‘후조(候鳥)’(1958), ‘메아리’(1959), ‘은냇골 이야기’(1961), ‘어린 상록수’(1975) 등이 있다.
150여 편의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모두가 단편 소설이라는 점이 그의 문학적 성격의 일단을 보여 준다.

전형적 단편 작가로서 작풍(作風)은 주로 한국적인 소박한 인정이나 서정의 세계에 기조를 두었다.

작중 인물들은 온정과 선의의 인간들이며, 도시보다는 향촌을, 기계 문명보다는 자연을, 현대적 세련미보다는 고유한 소박성을 각각 그리워하며 예찬하는 경향을 보였다.

호는 월주에서 늦게 난계로 변경하였다고 하니 지금 문학관에는 난계 오영수 문학관으로 이름지어져 있다.

부유한 집안의 오영수작가는 한창 젊었을때 가세가 기울때였나 보다

그때는 "재산이 비짜루로 쓸어내 듯 재산이 사라지더라"라고 회고하였다고 한다

"재산이란 삼대 부자없고 삼대 가난 없다"라고 한 말이 모두 맞아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대부분은 맞아지는가 보다

나의 집안만 봐도 위 선조들을 보면 몇대까지 인지는 모르지만 이 고을에서 큰 들까지 남의 땅 밟지 않고 다녔다는데 나는 땅 한평 부모로 부터 받지 못하였으니 아이러니 하다. 내 어렸을때 동네 이장님이 "명아 네가 크거든 네 집안 그 많은 땅 네가 원상복귀 하여라"라는 이야기가 지금도 내 귀에 들리는듯 하다  나는 부동산에 대하여 욕심이 없어 전혀 투자하지 않고 살았다. 욕심 없이 낙천적인 내 성격이 지금 내가 이 모양으로 살고 있는가 보다

문학관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며 순수 문학의 한 획을 그었다는 말과 갯마을은 영화화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것..

모두가 서정적인것 그리고 고향 냄새 물씬 풍기는 작품을 남기고 떠난 오영수 작가는 오직 단편소설만 남겼고 그림 글씨 못하는 것이 없는 팔방 미남이었다고 알려 준다

오영수 작가를 만나고 문학관을 나서는데 관장님이 여성분인데 커피 한잔과 다과까지 내어와 지금까지 방문한 기념관 중 방문객에 마음으로 다가 오는 분들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간직하고 경산으로 출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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