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다니,
살아 있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 년도 아니고, 십 년도 아니고, 몇십 년을 살면서도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다. 나는 잘살고 있는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하고 내가 나에게 묻고 또 물어도 알 수가 없는 삶, 나만 그런가? 아니다. 누구나 그런 의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자연을 모르고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을 모르며, 사람 속에서 살면서도 사람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자연 속에는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것과 접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 둘을 구별하고 깊이 생각하며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한쪽의 영역이 어디서 끝나고 다른 영역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아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지만, 모든 경우에 그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그 구별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평생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끝내 진리에 다가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구별을 알고 있는 현명한 사람은 항상 도달할 수 있는 것만 상대할 것이다. 그 영역 안에서 모든 방향을 향해 탐구하며 자신의 생각을 확립해간다.
이것으로 그 길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것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어느 정도 이상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 또 자연의 배후에는 언제나 불가해한 것이 있으며, 그것을 규명하는 것은 사람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영역이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괴테의 에 실린 글이다.
이 우주의 모든 이치가 다 그러할 것이다.
자연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가 그러하고 특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러할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이 있고,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런데 그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이 순간 속에서 뒤집어지고, 별개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우주의 이치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어차피 일어날 수 있는 일로, 곧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불과 같이 화를 내고, 그리고 후회한다. 곧 죽음의 시간이 올 것처럼 절망하고, 그리고 금세 체념한다.
그 어느 것일지라도 일어나는 모든 것을 내 정신과 육체의 영역 안에선 거부할 수도 바꿀 수도 없는데, 그것을 거절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의 부질없음이여,
이 불가해不可解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주의 순환, 마음의 순환을 깨닫고 관조하는 자세를 배우는 것, 그것이 아닐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세월은 간다. 그리고 어느 날 돌아갈 것이다.
돌아가고, 또 돌아가는 그 길목에서 잠시 만난 우리들,
눈물겹도록 소중한 인연들이 서로에게 사랑과 신뢰를 주지 못하고
왜 그리도 상처를 주고 또 주는 것인지,
글:우리땅걷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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