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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빈손 허명 2021. 11. 14. 18:04

예산 수덕사....

수덕사의 여승이란 가요가 있어 여승들이 있는걸로 알고 있었는데...

여승은 보이지 않고 스님들만....

덕숭산 수덕사는...

백제말에 창건되었고 고려 충렬왕때(1308) 지금의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구한말에 근대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鏡虛)선사가 이곳 호서에서 선풍을 일으켰으며 그의 제자 만공(滿空)선사가 수덕사에 머물며 가람을 중창하고 현대 한국불교를 일으킨 많은 후학을 배출하였다. 현재 우리나라 4대총림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들이 정진하고 있다.
1911년 조선총독부의 사찰령이 반포되어 불교종단을 선교 양종으로 통합하고 30본산제를 실시할 당시 수덕사는 충남 대본산인 마곡사의 말사였다. 이후 1962년 비구, 대처 통합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비상종회에서는 새로운 종헌(宗憲)을 의결하여 3월 25일 공포된 종헌에 의해 수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7 교구 본사로 승격, 현재는 42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수덕사 창건에 관한 설화 두 가지 이야기 중 덕산향토지에 실려 있는 내용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 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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